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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의 숲] 포항 송라면 하송숲
[경북의 숲] 포항 송라면 하송숲
  • 글·사진=이재원 경북 생명의 숲 고문
  • 승인 2019년 12월 25일 21시 24분
  • 지면게재일 2019년 12월 26일 목요일
  •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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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신앙이 만든 아늑함
포항 송라면 하송숲.

포항 송라면 하송리는 천령산에서 발원해 동쪽 바다 월포만으로 흐르는 청하천 북쪽에 형성된 마을이다. 옛날 마을 주변에 송림이 많아 상류에서부터, 맨 위쪽을 상송(上松), 중간을 중송(中松), 가장 아래쪽을 하송(下松)이라 불렀다. 이 세 마을을 합쳐 삼송리라 불렀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상송은 상송1리, 중송은 상송2리, 하송은 하송리라 했다. 하송리는 흔히 ‘하송리’라 부르는 본동과 국도변에 위치한 참샘이(冷泉)로 나뉘어 졌고 각각 하송1리, 하송2리로 됐다.

조선 세조 때 인근 8개 읍에 소재하는 역참을 관할하는 송라도찰방이 청하면 덕천리에 들어서고 하송마을은 조선 세조 4년(1458)부터 447년간 송라도찰방이 관할하는 역촌으로 번창해 주변에 12개 마을이 형성됐다 한다. 구한말 청하군 북면 소재지로 외역이라고도 불렀으며, 한때는 장이 설 정도로 번창했다.

하지만 여느 시골 마을들이 다 그렇듯이 지금은 나이 드신 분들이 마을을 외로이 지키고 있을 뿐이다. 인적이 드물어 한적한 마을길을 따라 동쪽으로 걷다 보면 마을이 끝나는 지점에 논이 나오고 그 너머로 너른 숲이 둘러싸고 있어 마을을 보호하는 듯 편안하다. 숲 너머로는 7번 국도가 지나가고 그 멀리로는 동해 바닷가가 있으나 마을에서는 숲 전경만 보일 뿐이어서 아늑한 느낌이다. 마을에서 바라보면 명백한 수구(水口)막이 숲임을 알 수 있다. 수구(水口)란 풍수지리에서 나오는 말로 물이 들어오거나 나가는 곳을 뜻한다. 그러니까 수구막이라고 하면 그러한 물이 드나드는 것을 막아준다는 의미이다. 그렇다고 댐을 막아 물을 고이게 하는 저수지 같은 효과를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다. 풍수지리에서 수구막이라는 뜻은 물이 빠져나가지 않는 느낌이 들도록 하는 심리적 효과를 말한다. 수구막이 숲은 마을의 앞쪽으로 물이 흘러가는 출구나 지형상 개방되어 있는 부분을 막기 위해 가로로 길게 조성한 숲으로 인공림이다. 한국인의 전통적인 의식구조 속에는 이렇게 열려 있는 마을의 앞부분을 가로막아야 영화로운 모든 기운이 마을 안에 저장돼 부귀영화가 초래된다고 하는 믿음이 뿌리 깊게 간직돼 있다.

포항 하송숲

풍수지리로 보면 하송마을은 행주형국(行舟形局)이라 한다. 땅의 모양이 사람과 물건을 가득 싣고 떠나는 배의 형상을 말한다. 떠다니는 배이기에 늘 위험이 따른다. 위험이 따르기에 전통적으로 마을에서 금기시하는 일이 많다. 배는 사람과 물건을 많이 실으면 가라앉기 때문에 마을에 석탑이나 기와집을 세우면 마을이 망한다는 얘기가 전하는가 하면, 우물을 파면 배에 구멍이 뚫려 배가 침몰한다 해 함부로 우물을 파지 못하게 했다. 행주형 지세의 마을은 배의 안정과 순조로운 항해를 위해서는 돛대의 설치가 필요하다 믿었다. 배의 한복판에 돛대가 세워지듯이 마을 한가운데에 돛대가 세워지는 것이다. 행주형 지세를 안정시키기 위해 하송리에도 마을 중앙에 ‘짐대’라 불리는 솟대가 있었다. 짐대는 돛대와 같이 생긴 긴 장대를 가리킨다. 하지만 세월이 흐름에 따라 풍수지리를 미신으로 여기는 분위기와 마을에 나이 많은 분들이 세상을 떠나면서 하송리의 짐대는 방치되다가 결국 썩어 없어지고 현재는 남아있지 않다.

짐대와 더불어 행주형의 하송리를 풍수지리로 보호하는 수구막이 인공숲을 조성한 이는 조선시대 부사과를 지낸 윤기석의 처 청풍김씨 김설보라는 사람이다.

조선시대 삼송리에 역촌이 조성되고 번창함에 따라 숲의 훼손 또한 진행됐고 고종 때에는 훼손이 더욱 극심해 마을의 안위까지 걱정되기에 이르렀다. 이때 역촌에서 큰 주막을 경영해 자수성가한 김설보 여사가 거액을 쾌척해 숲 일원을 매입해 느티나무, 쉬나무, 이팝나무 등을 심어 마을에 기증했다 한다. 이 숲이 울창해지고 있을 때 홍수로 상류의 호룡골 저수지가 붕괴되어 마을 앞 하천이 범람한 일이 있었다. 이때 볏단이며 가구며 가축들은 물론 사람까지 급류에 떠내려가다가 이 숲에 걸림으로써 인명과 재산을 구하게 됐다고 하는데, 이에 연유해 이 숲을 ‘식생이(食生而)숲’이라 불렀다 하고 일명 외역숲으로도 불렀다고 한다.

마을 하나가 떠내려가는 큰 물줄기로부터 사람을 구할 만큼 여기 하송숲의 규모는 상당했을 것으로 짐작이 된다. 또한, 불과 반세기 전까지만 해도 해마다 이 숲에서 열리는 단오절 축제를 구경나온 어린이들이 길을 잃고 헤맬 정도로 숲의 규모는 거대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그렇게 울창했을 숲의 규모는 많이 줄어든 채 현재 남아있다.

일제 강점기 때 총의 개머리판을 만들기 위해 느티나무는 모두 베어지고 이후 마을 사람들이 상수리나무 위주로 다시 숲을 조성했다. 그리고 언제부터인지 숲의 중앙 넓은 규모에 논이 들어서면서 숲의 영역은 줄어들었고 그나마 남은 숲들도 분리되어 따로 떨어져 보인다. 뿐만 아니라 농기계는 물론 모판이라든지 농사 짓는 부산물로 인해 숲의 경관은 많이 훼손됐다. 예전에는 분명 숲이었을 자리에 한두 채씩 민가가 들어서면서 숲의 규모를 축소했다.

숲의 훼손과 대조적으로 몇 해전 상송리에는 골프장이 들어섰다. 7번 국도에서 하송숲으로 들어가는 입구와 골프장 진입로가 마침 같다. 하송마을에서도 보이는 골프장을 탓할 수야 없지만 마을의 안위를 위해 풍수지리적으로 숲을 가꾸던 옛날 분들의 마음가짐과는 많이 달라진 세태는 그래도 씁쓸하다. 풍수지리가 미신이든 아니든 간에 결국 그 목적은 마을의 번영과 사람들의 안녕이었다는 점은 중요하다.

여인의 숲 조형물.

숲 한쪽에는 (사)노거수회에서 숲의 소중함을 알고 마을을 사랑하는 마음을 실천한 김설보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제작한 기념비가 건립돼있다. 숲 규모에 비해 넓게 자리 잡은 육중한 기념비가 어울리는지는 차지하고서라도 숲의 이름을 ‘여인의 숲’이라고 명명한 것은 다소 불편하다. 이 숲은 마을숲으로 마을의 역사, 문화, 신앙과 함께 해왔을 터이다. 마을 사람들의 사회적 활동은 물론 정신문화적 생활 그리고 다양한 이용을 담는 마을 공용의 녹지가 바로 마을숲이다. 비록 김설보 라는 개인의 높은 뜻과 희생을 모르는 바 아니나 마을숲에 개인적인 이름을 붙이는 것은 마을숲의 기능과 가치를 봤을 때 좀 부족하지 않을까 싶다. 거기다가 김설보 개인의 이름도 아니고 ‘여인’이라는 단어를 이름에 붙임으로써, 그 단어가 주는 어감으로 숲의 성격이 왜곡돼 보이지는 않을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마을 숲답게 하송리 숲이나 하송숲으로 불려도 충분하리라 본다.

하송숲이 사랑스러운 가장 큰 특징은 상수리나무, 팽나무, 느티나무, 이팝나무, 쉬나무 같은 활엽수가 주종을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소나무가 주종인 대개의 마을숲과 달리 봄에는 여린 잎이, 여름에는 녹음과 더위를 식혀주는 큰 그늘이, 가을에는 주변 누른 벌판과 어울려 곱게 물든 모습이나 상수리나무에서 떨어지는 도토리와 도토리를 줍기 위해 바삐 움직이는 다람쥐들까지, 그리고 겨울에 잎을 다 떨구고 마른 나뭇가지들이 만드는 쓸쓸하고도 아름다운 풍경까지 계절마다 다른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준다. 그 아름다움을 인정받아 2011년 생명의 숲과 산림청, 유한킴벌리가 공동으로 주최한 ‘제12회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공존상을 받기도 했다.

이재원 경북 생명의 숲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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