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식 포항지역위원회 위원
이상식 포항지역위원회 위원

인류사 최고의 발명은 문자의 창안이다. 오랜 세월 언어의 소통은 있어도 글자의 기록은 없었다. 이로써 선사 시대가 끝나고 역사 시대가 열리면서 획기적 발전을 이루었다. 지식의 공유로 진일보한 문명을 창조한 것이다.

글씨로 작성된 문헌 사료는 세계의 지역마다 다르다. 고대 이집트는 갈대의 일종인 파피루스를 가공해 적었고, 진흙이 풍부한 메소포타미아엔 점토판을 만들어 새겼다. 대영박물관은 수많은 점토 서판과 파피루스가 보관된 것으로 유명하다. BBC가 합작한 책자 ‘백대 유물로 보는 세계사’는 일부를 소개한다.

19세기 발견된 ‘홍수 서판’은 종교의 판도라 상자를 열었다. 기원전 7세기 메소포타미아 범람 설화가 적힌 점토판 책으로, 히브리 성서에 나오는 노아의 방주 내용과 흡사하다. 대홍수가 일어나니 배를 만들어 가족과 동물을 태우라는 신의 명령. 구약 성경은 신성한 계시가 아닌 중동의 전설이란 사실이 드러났다.

가장 유명한 ‘린드 수학 파피루스’는 84개 문항의 수학 문제가 적혔다. BC 1550년께 공무원 시험 교재였다니 경이롭다. 이집트 파라오 밑에서 일하는 행정관은 산학 실력이 중요했다고 한다. 맨 앞장엔 근사한 제목도 붙였으니 현대의 카피와 닮았다. ‘이 책을 사는 것은 곧 성공을 사는 것이다.’

역사상 최초의 도서관은 아시리아 수도 니네베에 등장한다. 기원전 669년 이라크 북부 일대로서 설립자는 아슈르바니팔 왕이다. 물론 서가는 점토 서판으로 채워졌다. 설립 목적이 걸작. 세월이 흘러도 자신의 위대함을 기념하기 위해서였다니 대단하다. 대영박물관 유물도 그중의 하나일지 모른다.

도서관은 남녀노소 평등한 공간이다. 언제든 누구나 이용이 가능한 공공물. 틈나면 가는지라 친근히 다가온다. 며칠간 볼일로 대구에 갔다가 ‘수성구립 고산도서관’에 들렀다. 자연히 포항의 포은도서관과 비교가 되었다.

둘 다 비슷한 시기에 신축 개관했다. 고산은 2015년 12월이고 포은은 10월이다. 지상 4층으로 건조물 층수도 똑같다. 대로변과 시장을 끼고 있는 고산은 주변 환경이 열악한 듯하다. 홈페이지에 의하면 소장 도서는 포은이 234천 권이고 고산은 132천 권이다. 나름대로 느낀 개선점을 제시한다.

먼저 신문 열람이다. 고산은 포항보다 글로벌했다. 뭔가 있어 보인다고나 할까. 얼핏 신문 명칭을 보곤 북한 출판물로 일순 착각한 중국 ‘인민일보’ 해외판, 그리고 도쿄 올림픽 305일이라 명기된 일본 ‘마이니치신문’이 비치됐다. 이를 벤치마킹하면 어떨까. 다언어 습득자를 위한 배려다.

다음 청사 소개이다. 우리 포은도서관은 외관이 특이하다. 미국 작가 멜빌의 해양 소설 ‘모비 딕’ 같은 흰 고래 형상은 아무리 보아도 싫증이 나지 않는다. 해외여행을 다니며 도서관을 방문하곤 하는데 이처럼 세련된 건축물은 없었다.

한데도 소개글은 전무하다. 참고로 국제 설계 공모로 건립된 고산도서관은 2층 열람실 복도에 이를 상세히 홍보한다. 공간 상당 부분을 할애해 사진과 함께 심사평, 당선자 인터뷰를 실었다. 국내 유일 스페인풍이라 자찬하면서 낙선한 작품들 설명도 곁들였다.

끝으로 기부 현황이다. 기회가 되면 서울아산병원 동관 로비의 나눔의 벽 견문을 권한다. 기부자 명패가 네댓 단계로 차별화됐다. 지인은 수천만 원어치 서적을 기탁했다고 한다. 조금이나마 다른 대우를 하면 기증 장려에 보탬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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