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제일 힘든 게 뭐나면 있는 그대로더라
나이테를 보면서 연못의 파문을, 지문을
턴테이블을, 높은음자리표와 자전거 바퀴를
연상하는 것도 좋으나 / 그도 결국은
나이테를 있는 그대로 보는 것만은 못하더라
누구는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지만
평화 없이는 비둘기를 보지 못한다면
무얼 먹었는지 피똥을 싸는 비둘기의 병든 내장과
절뚝거리는 발목을 보지 못한다면
그보다 슬픈 일도 없지
나무와 풀과 새의 있는 그대로부터 나는
얼마나 멀어져 버렸나
세상에서 제일 아픈 게 뭐냐면,
너의 눈망울을 있는 그대로 더는
바라볼 수 없게 된 것이더라
나의 공부는 모두 외면을 위한 것이었는지
있는 그대로, 참으로 / 아득키만 한 말



<감상> 나무의 나이테는 햇살과 바람과 비를 맞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다. 사람들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지 않고 연못의 파문을, 지문을, 회전반을, 바퀴를 떠올린다. 모두 마음에 때가 묻어있기 때문에 연상된 것들이고 가공된 것들이다. 자연은 있는 그대로 촘촘하게 어그러지지 않고 돌아가는데, 인간의 마음은 늘 간사하게 흔들린다. 과거와 현재에 학습된 상념이나 가치 때문에 있는 그대로의 진실을 보지 못한다. 세상에서 제일 아픈 게 믿었던 사람의, 사랑했던 이의 눈망울을 그대로 더는 볼 수 없는 거다. 그대가 변했든지, 내가 변했든지 외면하지 말고 여여부동(如如不動·시종 같아 흔들림이 없음)하는 한 해가 되었으면 한다. <시인 손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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