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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특집-경북·대구 근대 미술사] 청포도 다방·문화운동 선각자들
[신년특집-경북·대구 근대 미술사] 청포도 다방·문화운동 선각자들
  • 박경숙 큐레이터·화가
  • 승인 2020년 01월 01일 21시 35분
  • 지면게재일 2020년 01월 02일 목요일
  •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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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황무지 포항에 뿌린 씨앗…문화예술의 청사진 그린 인연들
제1회 포항향미회전 창립기념 사진 1963년 청포도 다방 앞에서

지역 근대문화예술은 1939년 ‘문장(文章)’ 8월호에 발표한 이육사의 대표적인 시 ‘청포도’ 작품에서 싹이 틔워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청포도’시는 오늘날 지역을 신비롭고 풍성한 인문학 향기로 가득 채워주고 있고 문화예술의 도시로서 발전하는데 원동력이 됐다. 가장 중요한 사건은 ‘청포도’를 상호명으로 사용해 최초 종합 문화예술적 공간이자, 지식인들의 사랑방 역할을 해온 ‘청포도 다방’을 열었다는 것이다. ‘청포도 다방’이 존재하지 않았더라면 포항문화예술사 시원이 성립이 되지 못했을 거라 짐작되는 만큼 ‘청포도’시와 ‘청포도 다방’의 의미는 중요하다.

이육사와 개인적 친분이 두터웠던 지역 문화운동가인 김대정(金大根)이 1936년 7월 경주 남산 옥룡암에 요양차 와 있던 육사를 포항으로 초청해, 송도 바닷가와 오천 미쯔와 포도농원으로 안내하며 옥고에 지친 그의 심신을 위로해 주었다. 이 일이 계기가 되어 이육사의 명시 ‘청포도’가 탄생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됐으며, 지역 문화예술사의 전설이 시작되는 사건이 태동 됐다.

지역에 이육사의 친지가 살고 있었다. 포항 영일군 기계면에 이육사의 집안 아저씨(증고종숙)인 해산(奚山) 이영우(李英雨)이다. 40세에 생을 마감한 이육사의 생애는 궁핍과 투옥의 세월로 나날이었다. 반복적으로 이어지는 투옥의 생활은 황폐해진 정신과 건강회복을 위해 집안 어른이신 이영우 집에 요양차 왕래가 있었으며, 포항 바닷가를 자주 방문했다는 사실들을 여러 자료에서 발견할 수 있다.

또한 이육사가 이영우 집에 머물면서, 확고한 결의를 다지는 중요한 역사적인 계기를 지역에서 맞았다. 그것은 바로 그의 수인번호 264에서 이육사(李陸史:최종적인 이름)의 한자로 표현하기로 마음을 먹었다는 것이다. 즉 혁명을 도모하려 했던 그의 뜻과 의지가 담겨 있음을 보여주는 이름을 이영우(李英雨)의 조언으로 지역에서 굳혔다는 것이다. 여러모로 이육사와 ‘청포도’시가 포항과의 인연은 각별하고, 지역으로서는 문화예술사적으로 큰 수확이며, 굉장한 행운이다.

이육사의 ‘청포도’시가 지역에서 창작됐다는 뜻깊은 기념을 놓칠 리가 없는 박영달 선생은 1952년 ‘청포도 다방’을 오픈 했다. 근대기 지역문화예술의 산실로서 문화예술인들에게 오랫동안 사랑을 받았던 ‘청포도 다방’은 4인의 문화운동 산각자들의 신념과 휴머니즘 정신이 빚어낸 결정체의 문화공간으로써 그들의 사상과 모든 행보들은 전설적인 역사로 기록되고 있다.

청포도 다방에서 박영달과 시인 박경용

박영달 선생이 6·25전쟁 중 피난길에 오르기 전, 집안 중요한 곳에 바이올린을 꽁꽁 숨겨 두었으나, 잃어버리고 난 후 몹시 상심하던 차에, 그동안 어렵게 모아둔 돈으로 무소유 상태의 일본인의 건물을 국가로부터 구입해서, 음악에 대한 취미도 살리고 생계문제도 해결할 방도로 ‘청포도 다방’을 열었다. 박영달 선생이 바이올린을 잃어버린 것이 어쩌면 포항문화예술사 차원에서는 큰 전환점이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남다른 소리 예술에 대한 애착은 클래식 음악 감상의 공간인 ‘청포도 다방’을 열게 되는 동기를 만들어 주었기에 포항문화예술의 시원이 됐기 때문이다. 우연치고는 그의 결정적인 변환은 지역근대문화예술사에서 참으로 대단한 사건이라 아니할 수가 없다.

1967년 흐름회 회원

최성소(흐름회 초대총무 역임)는 그 때의 ‘청포도 다방’은 “모든 면에서 결핍의 정점에 선 절박한 현실적 상황에서 고전음악이 흐르는 낭만적 분위기에 지적세계의 갈망을 추구하는 지식인들의 상처와 위로를 받는 안식처 역할을 했다고 회상했다”. 또한 “문화예술인들의 약속과 모임의 장소이었고, 특별히 할 일도 없는 날에도 그냥 ‘청포도 다방’에서 하루를 보내기 좋은 문화공간이었다 했다. 또한 문인들의 열띤 토론장소로서 담배 연기가 항상 자욱했다”고 회상했다. 이러한 분위기는 지식층들이 모여 포항문화예술 발전에 관한 논의가 자연스럽게 이뤄졌고, 구체적인 방안도 제시가 이뤄지는 등 말 그대로 18세기 유럽 살롱문화의 분위기 그 자체이었다 했다. 이러한 분위기의 중심에는 한흑구 선생(1909~1979)과 이명석 선생(1904~1979), 박영달 선생(1913~1986), 김대정 선생(1916~1995)의 문화운동가들의 역할이 컸다.

1968년 흐름회 회원

한흑구 선생은 포항문화예술의 정신적인 지주로서, 전국은 물론 대구·경북 문인들의 선망의 대상으로서 전국 문인들을 ‘청포도 다방’에 자주 찾아 오게 되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고, 박영달 선생은 ‘청포도 다방’의 대표이자 예술론을 설파하는 이론가로서의 면모가 지식층을 모여들게 했다. 이명석 선생은 포항제일교회를 중심으로 청년운동, 문화운동, 육영사업 등을 펼치며 일찍부터 복지활동에 큰 업적을 남겼던 인물로서, 그를 따르는 많은 사람들이 ‘청포도 다방’을 찾았다. 여기에다 김대정 선생은 유머감각과 부드러움 그리고 순한 인간형으로서, 지역 모든 계층들의 사람들과 붙임성 있는 사교적인 성격으로 그를 따랐던 사람이 ‘청포도 다방’을 찾게 했다. 이들 4인이 그야말로 ‘청포도 다방’을 포항문화예술의 중심공간으로서 활기차게 만들었던 인물들이었으며, 포항 문화예술의 청사진의 보고지로서 많은 역할을 했다.

청포도 다방 옛자리에 업종 변경 후 정경 사진

‘청포도 다방’은 문학과 음악, 그림, 사진을 부흥시키는데 일조 했고, 사회적 미팅 장소였다. 또한 재능 있는 젊은이들을 유력 인사에게 소개 시킨다든지 새로운 문화예술인들의 스타를 탄생시키는 데뷔 장소가 되기도 했으며, 메세나(문예 학술의 옹호)역할도 했다. 문학은 한흑구 선생의 수도권 지역의 두터운 인맥이 크게 작용되어 이원수, 이주홍, 황순원, 서정주 등 국내 내로라 하는 문인들이 많이 찾았다. 사진·미술부문에는 구왕삼(사진), 정점식, 서창환, 김우조, 이경희, 박지홍, 김준식, 손수택, 권영호, 최종모 등 대구·경북 지역 미술인과 사진가들의 전시도 열렸고 외부 화가들이 많이 찾았다.

포항근대문화예술 운동가들은 오늘날과 같이 문화예술 활동이 엄격히 분화되어 각기 활동 영역을 지켰다기보다 함께 어울리는 일이 많았다. 한흑구 선생을 비롯한 지역 근대문화예술 운동가들은 그 자신들도 왕성한 예술가이자 활동가였기 때문에 다양한 역할을 겸할 수 밖에 없었다. 황무지나 다름 없었던 당시 포항문화예술계에 4인의 문화운동 선각자들의 교류와 소통, 각 장르의 문화예술의 소양과 인식의 저변확대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 환경을 바꾸어 나갔고, 무엇보다도 적극적인 문화운동을 펼쳐 가시적인 성과(포항문화원 설립, 포항예총 결성)를 이뤄 내었다는 점에서 오늘날, 지역 문화예술사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는데 효시를 제공했다.

‘청포도 다방’에서 가장 뜻 있는 결실은 지역 최초 문화예술단체인 ‘흐름회’(초대회장 한흑구)가 1967년에 결성됐다는 것이다. ‘흐름회’는 동해바다도 흐르고, 형산강도 흐르고, 구름도 흐르고, 인생도 흐르고 해서 항상 흘러서 새롭게 살고 새롭게 성장하자는 뜻에서 한흑구의 ‘흐름회’에 대한 취지의 뜻에 따라 문화예술인 9명이 주축이 되어 만든 문화예술단체이다. 한흑구(회장), 박영달(부회장), 김대정(부회장), 최성소(총무), 김녹촌, 김상훈, 신상률, 손춘익, 최정석이 발기인이다.

흐름회 주최 문학의 밤 주최 보도자료.영남일보.

흐름회가 주최한 모든 행사는 지역 최초의 예술행사였다. 1969년 제1회 동해지구 어린이 백일장 개최, 박경용, 김녹촌, 손춘익 문인들의 출판 기념회를 개최하는 등 흐름회의 역할은 참으로 중요했다. 또한 해마다 ‘문학의 밤’행사를 주최해 전국 문인들이 포항을 찾아오게 하는 등 축제 분위기를 조성해 주었고 차세대 문인들을 이어주는 가교 역할도 했다.

흐름회 주최 문학의 밤 개최 보도자료.영남일보.

이육사는 “내 고장은 조선이고 청포도는 우리 민족인데 청포도가 익어가는 것처럼 우리 민족이 익어간다”. 그리고 “일본도 끝장 난다고 회고했다” 1950년대~1960년대의 지역은 비록 황무지의 척박한 문화 환경이었지만 이육사의 ‘청포도’시가 ‘풋 포도’로 은유하듯 언젠가는 지역 문화예술도 익어갈 것이고 꽃이 필 것이라는 미래의 희망과 기다림을 어쩌면 근대문화예술 운동가들이 ‘청포도 다방’에서 꿈꾸었을 거라 생각된다.

현재, 문화적 도시재생 사업 일환으로 포항문화예술창작지구 ‘꿈틀로’에 ‘청포도 다방’이 새롭게 오픈했다. 21세기형의 문화 사랑방의 역할과 문화예술의 장소가 되어, 세대와 세대, 예술의 장르를 넘나드는 통섭의 문화공간이 됐으면 하는 바램이다. 또한 지속적인 근대문화예술사에 대한 자료 발굴과 학술적인 연구가 ‘청포도 다방’에서 담론이 이뤄지는 역할을 해주었으면 한다.
 

박경숙 큐레이터·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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