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영 정치학박사·경남대 교수

2019년 12월 27일 ‘준연동형 비례대표’와 ‘선거연령 18세’를 골자로 하는 「공직선거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재적의원 295인 중 한국당 108명이 불참한 가운데 민주당과 야4당 167명이 참석했고, 찬성 156명 반대 10명, 기권이 1명이 나왔다. 12월 30일 「공수처법」도 민주당과 야4당 의원만 167명이 참석했고, 찬성 156명 반대 10명 기권이 1명이었다. 문제는 이러한 과정이 민주주의적 의사결정 구조와 위임민주주의에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점이다. 모든 정당이 민주주의의 가치인 절차보다 독재체제의 가치인 목적에 매달린 결과이다.

민주주의적 의사결정 구조는 “토론에 의한 합의”이며, 이것이 여의치 않을 때는 “토론 후 다수결”로 간다. 토론으로 일방성과 편향성을 제거하고 교집합을 찾아 모두가 만족하지 않지만 모두가 불만없는 정책을 만들어 내는 방식이 최선이다. 합의에 이르지 못할 경우 모든 참가자에게 다수가 될 수 있는 토론의 기회를 한번 더 제공한 후, 모두가 참여한 가운데서 다수를 차지한 정책을 선택하는 방식이 차선이다. 정책집행과정에서 소수의 협력을 얻기 위해, 차선에서 승리한 측은 소수가 선택한 정책 중 일부를 받아들이는 포용력을 발휘하기도 한다.

「선거법」과 「공수처법」에서 처음부터 합의와 다수결은 전제되지 않았다. 연동형비례대표제에는 야4당의 원내진입 목적이 담겨있었다. 민주당은 「공수처법」 제정과 검경수사권조정을 위한 「형사소송법」 개정 등 개혁에 야4당의 협조가 필요하기에 이들의 선거법 개정안을 받았다. 한국당 역시 연동형 비례대표제와 선거연령 18세가 자신에게 불리하기 때문에 논의 자체를 거부했다. 더하여 장외투쟁을 선택했고 국회표결에 불참하는 등 의회주의와 점점 멀어지는 행태를 보였다. 모든 정당은 자신의 목표 때문에 민주주의 의사결정 구조를 배척한 것이다.

민주체제는 절차, 독재체제는 목적을 우선시 한다. 절차는 위에서 언급한 “토론에 의한 합의” 내지 “토론 후 다수결”이다. 절차를 선택하면 원하는 목적을 달성할 수 없을 수 있지만 적어도 구성원들의 의사가 담긴 결론을 도출할 수 있다. 목적을 우선시 하면 자신이 의도한 바를 이룰 수 있지만 구성원 일부의 의사가 반영되지 않는다. 더불어 전체 구성원의 자유와 인권이 제한 받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정책집행비용이 만만찮게 든다. 목적을 이루기 위해 불완전한 정책이 결정될 수 있고, 정책을 집행하는 과정에서 곁가지들을 쳐내야 하기 때문이다.

「선거법」과 「공수처법」에서 모든 정당이 목적을 선택했기 때문에, 위임민주주의의 본질이 훼손되었다. 민주당과 야4당은 자신을 지지하는 국민의 의사를 반영했을지 모르나, 한국당을 지지하는 국민의 의사를 반영하지 못했다. 한국당 의원 108명을 배제한 체 법안을 결정했으므로, 이들을 지지한 국민의 빼고 두 법안을 처리한 셈이 된다. 한국당은 의사결정과정에 참여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신을 지지한 국민의 의사를 반영해야 하는 의무 자체를 방기한 것이다. 자신을 지지하는 국민의 의사를 단 1%도 반영하지 못한 무능력한 정당이라는 의미다.

민주주의는 절차로 지켜지는 제도이다. 그런데 모든 정당은 자신의 목적을 위해 절차를 내팽개친다. 민주당과 야4당은 패거리를 지어 자신의 목적에 맞지 않는 정당을 배제한다. 한국당은 자신의 목적을 위해 몽니를 부리면서 자신을 지지하는 국민의 의사를 단 1%도 정책화시키지 못한다. 반민주주의 현상이다. 국민의 지나친 정당 추종화가 원인이다. 모든 정당은 자신이 어떤 짓을 해도 지지를 철회하지 않는 콘크리트층이 있다고 믿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 판단자인 국민이 자신의 지위를 지키지 않는 순간 정당과 정치인이 지배자로 돌변하는 상황을 목격하고 있다. 검경수사권 조정법안 처리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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