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선규 대구교대 교수
양선규 대구교대 교수

사마천의 『사기(史記) 열전(列傳)』은 중국의 역사서지만 한 국가의 역사적 기록을 뛰어넘는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인간 중심의 역사 기술을 통해서 바닥 깊은 곳까지 인간 탐구를 행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구술(口述), 구전(口傳)으로 간헐적으로 이어지던 ‘이야기를 통한 인간 탐구’가 본격적으로 집대성된 것이 바로 『사기 열전』입니다. 기록문학의 진정한 효시라 할 것입니다. 한 인간의 삶을 통해 그와 함께 했던 시간(역사)을 평가한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닙니다. 사가(史家)의 내면에 모든 사람들에게 귀감이 될 만한 굳건한 모랄(윤리의식)이 자리잡고 있어서 그가 전하는 이야기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물음을 지속적으로 던질 수가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독자들의 공감을 얻을 수 있습니다. 사마천은 그 질문에 이렇게 대답합니다. “때를 만나면 그것을 놓치지 말아야 하고, 인간에게 요구되는 도리는 하늘이 무너져도 지켜야 한다” 그 두 가지 근본 원칙을 강조하기 위해 그는 여러 가지 인물형을 묘사합니다. 때를 아는 자와 모르는 자, 시간을 비껴가는 자와 거스르는 자, 시대를 타고 솟아오르는 자와 그것을 뒤흔들고 바꾸어 놓는 자 등등 성공하고 실패하는 인간 군상의 삶들을 가지런히 배열합니다. 그런 다양한 이야기를 통해서 그가 생각하는 두 개의 근본 해답, ‘때와 도리’의 변증법이 자연스럽게 해명될 것이라고 그는 생각했습니다. [김원중, 『사기 열전』 「해제」 참조].

『사기 열전』에 나오는 한나라 장수 한신(韓信)의 이야기는 너무도 유명합니다. 그의 도움으로 천하를 얻은 한고조 유방이 그를 제거한 일을 두고 토사구팽(兎死狗烹, 토끼사냥이 끝나면 개를 잡아먹는다)이라는 말이 널리 퍼진 것도 유명합니다. 한신은 초왕 항우의 군대를 포위해 섬멸함으로써 유방이 천하를 차지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합니다. 그때 나온 사면초가(四面楚歌, 사방이 적으로 둘러싸여 있음)라는 고사성어도 유명하지요. 그 한신이 입신(立身)해서 토사구팽까지 당하는 과정이 참 드라마틱합니다. 후일 초왕(楚王)의 자리에까지 올랐으면서도 여후(呂后, 유방의 정실)에 의해 주살될 수밖에 없었던 그의 삶이 뭇 사람들의 동정을 사기도 합니다. 한신이 죽고 1년 뒤 유방도 죽습니다. 우리는 사마천이 전하는 이야기를 통해 그들 두 사람이 각자에게 닥친 위기와 기회를 어떻게 피하고 잡는지를 여실히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누가 끝까지 ‘인간에게 요구되는 도리’를 지켰는지를 판단할 수 있게 됩니다.

종리매(항우 휘하의 장수, 한신의 친구)는 스스로 목을 찔러 죽었다. 한신은 그의 목을 가지고 가서 고조(유방)를 만났다. 그러자 고조는 무사를 시켜 한신을 묶게 했다. 한신이 말했다. “정말 사람들의 말에 ‘날랜 토끼가 죽으면 훌륭한 사냥개를 삶아 죽이고, 높이 나는 새가 모두 없어지면 좋은 활은 치워버린다. 적을 깨뜨리고 나면 지모 있는 신하는 죽게 된다.’라고 하더니, 천하가 이미 평정되었으니 내가 삶겨 죽는 것은 당연하구나!”

황제가 말했다. “그대가 모반했다고 밀고한 사람이 있소.”

드디어 한신의 손발에 차꼬와 수갑을 채웠다. 낙양에 이른 뒤에야 한신의 죄를 용서하고 회음후로 삼았다. <『사기 열전』>

유방은 한 번 더 자숙의 기회를 주지만 한신은 끝내 기대를 저버립니다. 유방의 묵인하에 여후는 한신을 불러내서 무참히 죽여버립니다. 권력의 냉혹한 속성일까요, 아니면 때를 모르는 우둔한 자의 자만심일까요? 공수처니 검찰개혁이니 해서 나라 안이 팥죽 끓는 것 같은 지금, 사마천이 들려주는 토사구팽의 속내가 묘한 생각 거리를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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