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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쥐구멍에 볕 들 날’ 을 기다리며
[데스크 칼럼] ‘쥐구멍에 볕 들 날’ 을 기다리며
  • 곽성일 편집부국장
  • 승인 2020년 01월 12일 15시 59분
  • 지면게재일 2020년 01월 13일 월요일
  • 18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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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성일 편집부국장
곽성일 편집부국장

2020년 경자년(庚子年), 흰 쥐의 해가 시작됐다.

쥐는 십이지에서 첫 자리를 차지하는 동물로, 방위의 신이자 시간의 신이다. 우리 민속에서 쥐가 다산과 풍요, 영민과 근면을 상징하는 동물로 인식됐다는 점을 부각한다. 쥐가 열두 동물 중에서 첫 자리인 것은 영민하기 때문이다.

설화에 의하면 신이 동물들의 순서를 정하기 위해 달리기를 시켰다.

다른 동물에 비해 형편없이 덩치가 작은 쥐는 정상적인 달리기를 해서는 꼴찌는 떼놓은 당상이었다. 그러나 쥐는 다른 동물에 비해 뛰어난 머리를 갖고 있었다. 궁리 끝에 묘안을 찾은 쥐는 다른 동물들이 달리기 연습에 몰두하는 데도 아랑곳없이 천하태평이었다. 동물들은 이런 쥐의 모습을 보며 측은하게 여겼다. 연습한다고 해도 꼴찌를 면할 수 없는 처지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쥐는 시합 당일 출발선에서 긴장한 소의 귀에 숨어들었다. 소가 1위를 할 것으로 예상했기 때문이었다. 예상대로 소는 호랑이 등 내로라하는 맹수들을 제치고 1위를 질주했다. 고대의 소는 지금의 유순한 소와는 달랐던 모양이다. 드디어 결승선에 1위로 골인하기 직전, 소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순간, 소귀 구멍에 숨어 있던 쥐가 결승선에 폴짝 뛰어내려 소보다 먼저 골인을 했다. 쥐가 상상을 초월한 1위를 한 것이다. 소의 후회는 뒤늦었다. 반칙의 규정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쥐의 영특함에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못했다. 이처럼 영리한 쥐의 해에 대한민국이 산적한 현안과 폐단을 극복하는 혜안이 찾아오기를 소망한다.

총선의 계절이 다가왔다.

늘 그래 왔듯이 얼마나 많은 정치 후보자들이 말의 성찬을 쏟아낼지 걱정이 앞선다.

결코, 책임질 수 없는 공약이라는 이름의 숱한 말들을 생산할 것이다. 50여 년 전쯤으로 기억된다. 포항·영일 지역에 출마한 어느 후보가 공약으로 포항에서 울릉도 가는 다리를 놓아 주겠다고 했다. 그 당시 울릉도를 가보지 못한 대다수 유권자는 울릉도가 포항에서 그리 멀지 않은 바다에 있는 줄 알았을 것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생각하면 기가 막힐 일이다.

문제는 지금도 그러한 실현 가능성이 전혀 없는 공약이 난무한다는 사실이다. 중앙 정부에서 계획도 없는 지역 대형 인프라 사업을 마치 자신이 당선되면 일사천리로 진행될 것 같은 허언(虛言)을 일삼는다.

이러한 정치인들의 입에 볕이 드는 일은 없어야 한다.

볕은 서민들의 삶의 터전인 재래시장과 골목길에 따스하게 비춰야 한다. 지진으로 집에 가지 못하고 생활하는 체육관 텐트와 트라우마로 일그러진 지역주민들의 얼굴에 환하게 볕이 들어야 한다.

올해는 흰쥐의 해이다. 검은 쥐와 비교되는 상서로운 이미지이기도 하다.

그러나 현재 흰쥐는 대부분 실험실 해부용으로 사용된다. 인간들의 생명을 연장하기 위해 암 등 각종 질병 해결을 위한 도구기 된 지 오래다.

남과 북, 북과 미, 중국과 일본, 러시아 등 한반도 주변 강대국들은 자국의 이익을 위해 흰쥐와 같은 희생양을 찾고 있다. 국제 정세에 강대국의 실험대상이 될 수 있다. 우리는 이러한 엄중한 정세를 외면하고 진보와 보수, 세대 공감 결여,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불평등에 신음하고 있다.

위기를 기회로 바꿀 지도자의 모습도 보이지 않는다.

‘백마를 탄 초인’은 오지 않는다. 이제는 ‘덜 나쁜 사람’을 선택해야 하는 현실이 제발 오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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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성일 기자 kwak@kyongbuk.com

행정사회부 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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