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동학 혜명학술원 원장

역사는 반복된다는 것이 정설이다. 이것은 평행이론으로 설명되기도 한다. 연산군의 적폐의 실정을 비판하면서 집권한 중종과 훈신계열인 박원종·유순정·성희안 등의 훈구파세력들은 1506년 중종반정으로 집권한다. 중종은 연산군의 적폐를 개혁함과 동시에 쫓겨난 신진사류를 등용해 파괴된 유교적 정치 질서의 회복과 성리학의 장려에 힘썼다. 이러한 새 기운 속에서 조광조 등 신진사류가 역사의 무대에 등장한다. 정암 조광조((趙光祖·1482~1519)는 개국공신 정도전, 대동법 시행자 김육과 더불어 조선의 3대 개혁정치가로 평가받는 인물이다.

그는 17세 때 무오사화로 유배 중인 점필재 김종직의 수제자인 김굉필에게 학문을 배워 촉망받는 청년 학자로서 사림파의 영수가 됐다. 그는 향약을 실시하고, 추천제인 현량과를 실시하고, 소격서를 폐지했다. 특히 현량과의 실시로 김식·기준·한충·김구·김정 등 소장학자들이 발탁되어 1519년 반정공신 중 지나치게 공을 인정받은 사람의 훈작을 삭탈하는 위훈삭제(僞勳削除)를 주장하여 전(全) 공신의 3/4에 해당되는 76명의 훈작을 삭제하게 되었으며, 이는 기묘사화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다.

여기에 불만을 품은 권력자인 남곤, 심정, 홍경주 등이 대궐 후원의 나뭇잎에 과일즙으로 ‘주초위왕’(走肖爲王)이라는 조씨가 왕이 된다는 글자를 써 벌레가 갉아먹게 한 다음에 궁녀로 하여금 이것을 왕에게 바쳐서 의심을 조장시켰다. 또한 홍경주 등이 탄핵을 주장하여 조광조의 도학정치와 급진적 개혁에 염증을 느끼고 있던 비겁하고 소심한 중종은 훈구파의 탄핵을 받아들여 1519년 조광조·김식·김구·김정 등을 투옥하고 이어 사사(賜死)의 명을 내렸다. 이후 조광조는 사형이 면제되어 화순의 능주에 유배되었다. 그 후 훈구파의 김전·남곤·이유청이 3정승에 임명되자 현량과가 폐지되었고, 조광조는 그해 12월에 사사되었다. 이 사건이 기묘사화(己卯士禍)이다.

조광조는 선조 초에 사림들이 추앙하는 인물로 신원(伸寃)되어 영의정에 추증되었고, 문묘에 배향되었다. 조광조를 비롯한 사림파는 현실에서는 졌으나 역사에서는 영원한 승리자가 되었다. 촛불민심과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으로 천운이 좋아 집권한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5월 19일 적폐청산과 검찰개혁의 적임자로 윤석열 현 총장을 서울중앙지검장으로 전격 발탁하였다. 이후 2019년 6월 17일 문재인 대통령에 의해 윤석열이 검찰총장 후보자로 지명되었다. 검찰총장 임기제가 도입된 1988년 이후 고검장을 거치지 않고 총장으로 직행하는 첫 사례의 파격적인 인사였다. 30대 중반에 감찰의 수장인 대사헌에 발탁된 조광조와 유사하다.

이와 같은 파격적으로 윤 지검장을 검찰총장 후보자로 선택한 첫 번째 배경으로는 그가 국정농단과 사법농단 등 적폐청산 수사를 진두지휘하며 청와대의 두터운 신망을 얻었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그러나 문 대통령과 윤 총장은 조국사태로 인하여 틈이 가고 이후 유재수 감찰 무마사건과 특히 울산선거공작사건 의혹이 터지면서 더욱더 멀어지게 되었다. 조광조의 공신들의 위훈삭제사건으로 집권층의 심기를 거슬린 것과 유사한 일이 벌어졌다.

그동안 적폐사건수사와 울산선거공작 사건, 유재수 사건, 조국관련 사건 수사 등 살아있는 권력의 수사에 매진하고 헌신하던 윤석열 라인의 검사들은 추미애 형조판서(현 법무장관)가 임명되고 급기야 민심과 상식을 뛰어넘는 “윤 총장 라인의 대학살”이라 표현되는 검사장 인사로 그동안 살아있는 권력을 향하던 윤 총장 라인은 큰 동력을 잃었다. 추형조 판서는 “윤 총장이 명을 어겼다”는 왕조시대나 있을 법한 가치관으로 같은 동급의 장관급인 윤 총장의 징계를 여권의 당·정·청이 모두 주장하면서 이후 검찰인사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는데, 살아있는 권력에 대한 수사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문재인 정부는 실감 나게 보여주고 있다.

헌법과 법을 위반하고 상식과 원칙을 파괴하면서 정권이 원하는 방향으로 몰아가는 보습을 볼 때 4년 남짓 개혁정치를 추진한 조광조의 사림파를 제거한 1517년의 기묘사화와 이번 수요일의 윤 총장 라인의 핵심인사들의 좌천성 인사는 유사한 점이 많다. 그러나 결정적인 차이점은 조광조는 왕조시대의 인물로 사약을 받았으나 현재는 국민이 주인인 공화국이라는 사실로 국민들이 상식적으로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이다. 윤 총장 라인은 향후 행보는 대한민국의 정의와 공정이 살아있는지와 살아있는 권력을 수사할 수 있는 바로미터가 될 것이다. 무소불위의 권력이 검찰인지 청와대인지가 여실히 드러나는 사건이 이번의 형조판서 추미애 대감과 문재인 왕의 검찰인사라 할 수 있다.

결국 이번 ‘윤 총장의 항명이냐 추 장관과 청와대의 인사 학살이냐’는 인사 사태는 4월 15일의 총선에서 국민들의 민심이 여실히 보여줄 것이다. “우리 윤 총장”에서 토사구팽의 사자성어가 생각나는 이 사태는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나라를 여실히 보여주는 법치의 상식과 원칙을 심각하게 파괴하는 정부라 볼 수 있다. 앞으로도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일들을 수십 번 보게 되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민주공화국이냐 왕조국가이냐? “검찰총장이 제 명을 거역한 것”이라 했으니 아예 사약을 내리심이 어떤지 묻고 싶다.

저작권자 © 경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