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선규 대구교대 교수
양선규 대구교대 교수

우리는 날마다 꿈을 꿉니다. 꿈은 밤의 지배자입니다. 적어도 우리 인생의 30%는 그의 관할입니다. 그 비중에 비한다면 꿈은 여전히 홀대를 받고 있는 편입니다. 누구도 꿈에 대해서 대놓고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터부시되는 경우도 허다해서 아침에 꿈 이야기를 하는 것은 좋지 않은 것으로 치부됩니다. 우리는 꿈에 대해서 학교에서도 가정에서도 전혀 배울 기회가 없습니다. 거의 방치되는 수준입니다. 몇 차례에 걸쳐서 꿈 이야기를 해보려고 하는 것도 그런 까닭에서입니다. 최소한의 꿈에 대한 지식을 같이 나누어보려 합니다.

꿈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큰 꿈과 작은 꿈, 이른바 용꿈과 개꿈이 그것입니다. 큰 꿈은 미래를 다루고 작은 꿈은 현실의 불만을 다룬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꿈에 대해서 과학적인 태도를 가지고 임상적인 분석을 시도한 이가 프로이트입니다. 그의 저서 『꿈의 해석』(1900)은 인간의 사고와 행동이 얼마나 비이성적인지를 잘 설명합니다. 무의식이 지배하는 꿈을 분석해서 환자의 심리적인 문제가 어디에서 기인한 것인지 추론해 내는 프로이트의 노력은 많은 이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주었습니다. 프로이트의 연구 방향과는 다른 길을 선택했던 융도 꿈의 해석에 지대한 공로를 세웠습니다. 융은 인간을 다면체로 이해했습니다. 같은 분석 대상을 두고 정 반대의 해석을 하는 프로이트와 아들러를 보고 인간의 심성 자체가 양극, 양면성을 가질 수 있겠다고 생각합니다. 유명한 외향성과 내향성이라는 심리유형 개념도 그런 포섭적인 관점이 만들어낸 결과였습니다.

...융이 도입한 외향성과 내향성 개념은 프로이트와 알프레드 아들러가 각각 동일한 정신병리학 자료를 앞에 두고 아주 다른 해석을 할 수 있다는 관찰에서 비롯되었다. 융은 이렇게 썼다. 두 이론은 대단히 정확하기 때문에, 다시 말해, 둘 다 그들의 자료를 설명해주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결론적으로 신경증은 두 가지 상반되는 측면을 가진 게 틀림없다. 그 한 측면이 프로이트의 이론에 의해 파악되고 다른 측면이 아들러의 이론에 의해 파악된다. 하지만 어째서 이들 연구자는 각자 한 측면만을 보게 되었고, 왜 자신의 견해만이 타당하다고 주장하는 것일까? 융은 아들러의 심리학이 대상을 희생시켜 주체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반면 프로이트의 심리학은 주체가 의미 있는 대상에 끊임없이 의존하는 것으로 본다고 지적한다. <『처칠의 검은 개 카프카의 쥐』, 279쪽>

내향성, 외향성을 성격이 내성적이라 조용한 사람과 외부적인 활동을 많이 하는 활달한 성격의 사람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융이 말한 내향성, 외향성은 그런 개념이 아닙니다. 세계를 받아들이는 태도의 문제입니다. 답을 안(주체)에서 찾으면 내향, 밖(대상)에서 찾으면 외향입니다. 외향성 심리유형의 인간은 절대 자기 스스로 판단과 선택을 하지 않습니다. 외부의 어떤 절대적인 권위(그의 콤플렉스가 인정하는)가 결정해 주기를 바라고 기다립니다. 터미네이터(해결사)의 승인 없이는 어떤 행동도 불가능합니다. 그런 사람이 외향적 인간입니다. 그 반대가 내향성입니다. 척척 알아서 거침없이 판단하고 행합니다. 언뜻 보기에는 내향성이 좋은 것 같지만 꼭 그런 것도 아닙니다. 자신이 처한 상황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지나치게 주관에 함몰되는 이들도 적지 않기 때문입니다. 융은 내향성, 외향성 이외에도 감각과 직관(지각기능), 사고와 감정(판단기능)이라는 네 개의 기능으로도 심리유형이 나뉜다고 했습니다. 내향성 직관형인 사람, 외향성 사고형인, 내향성 감각적인 사람 등등으로 나누어 고찰할 수가 있다는 거지요. 꿈도 그런 심리유형에 따라서 그때그때 시의적절하게 분석되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를테면, 내향성 감정형인 사람이 큰(절대) 권력을 쥐게 되면 좌고우면하지 않고 자기 길을 가는 통에 사회적으로 큰 혼란이 초래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런 사람이 자기 꿈을 어떻게 오해하는지에 대해서 다음 편에서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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