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3월 21일. 최병국 대검중수부장이 전격 경질됐다. 한보 수사 과정에서 정치적 외압에 의한 교체였다. ‘오늘은 정치논리에 검찰이 굴복한 최악의 날’이라며 통분한 검사들은 ‘경술국치일’에 빗대 ‘검치일(檢恥日)’이라고 자탄했다.

“정치권이 이렇게 검찰을 흔들면 검찰도 정치권 비리 수사에 적극 나서야 한다”는 거센 국민적 반응을 일으켰다. 그 뒤 최병국 검사는 전주지검장에서 퇴임하면서 퇴임사에 “맹수는 병이 깊어지면 제 살을 물어뜯어 그것이 동티가 돼 죽음에 으른다”고 했다.

“하늘이 착하지 않는 자를 돕는 것은 좋은 조짐이 아니다. 그 흉악함을 기르게 하여 더 큰 벌을 내리려는 것이다” “갑자기 부는 바람은 한나절을 지탱하지 못하고, 쏟아지는 폭우는 하루를 계속하지 못한다”는 경고도 덧붙였다.

심재륜 고검장은 퇴임사에서 “칼에는 눈이 없다. 칼을 쥔 사람이 찔릴 수도 있다”면서 “이른바 검란(檢亂)의 원인과 배경은 거듭된 검찰 인사의 잘못과 검찰권에 대한 간섭에서 비롯된 것인 만큼 인사권자인 정부 최고책임자의 책임이 크다”고 했다.

노무현 정권 시절 ‘굿모닝시티사건’의 검찰 수사에 대해 집권 여당의 준법은 안중에 없는 대응에 분통이 터진 국민이 “검찰 힘내라”며 삼계탕용 닭을 검찰에 배달, 검찰을 응원했다. 촛불집회 주도 인사들에게 검찰이 사전 보고 없이 체포영장을 청구한 데 대해 법무부가 경위를 조사하겠다고 하자 송광수 검찰총장이 단호히 반발했다. “나를 직접 조사하라” “검찰이 중립을 이루려면 총장 5명이 옷을 벗을 수 있다”며 검찰총장의 확고한 의지를 보여주면서 맞섰다.

검사들은 검찰 독립은 검찰총장 하기에 달렸다는 말을 많이 한다. 검찰총장 한 사람 하기에 따라 검찰이 권력의 시녀가 될 수 있고, 정의의 화신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검찰총장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은 권력에 맞설 수 있는 불퇴전의 의지와 용기다.

‘이용호 게이트’ 특검의 차정일 검사는 “수사 내내 시지프스처럼 무거운 돌을 굴려 올리는 심정으로 최선을 다했다”고 토로한 바 있다. 윤석열 검찰총장에게 국민은 당부한다. “극복되지 않는 운명은 없다” 바위를 굴려 오르는 일을 반복하는 시지프스의 신념과 투지를 보여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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