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병진 경주지역위원회 위원
서병진 경주지역위원회 위원

 

어릴 때 천자문에 ‘금호거궐 주칭야광’(劍號巨闕 珠稱夜光)이란 구절을 배웠다.

검은 ‘거궐검’을 으뜸으로 삼고 구슬은 ‘야광주’를 일컫는다’라는 뜻이었다. 거궐검이 명검이요, 야광주가 가장 좋은 구슬이라는 말이다.

중국 무협소설을 읽다 보면 명검들이 많고, 구슬에도 화씨지벽이라는 완벽한 구슬이 있다는 것도 알았다. ‘의천도룡검’이라는 명검을 두고 사생결단 쟁탈전을 벌이는 중국 드라마를 본 일도 있다.

요즘 언론상에서 전가보도(傳家寶刀)란 말을 심심찮게 듣고 있다. 직권남용을 전가의 보도처럼 휘둘렀다는 말도 자주 듣는다.

전가의보도(傳家寶刀)는 ‘대대로 집안에 전해지는 보검’이라는 뜻이다.

강철도 자를 수 있는 명검. 그 보검으로 상대하기 어려운 적을 척척 해치우듯이 어려운 일을 해치울 수 있는 결정적 방법이나 수단을 가리키는 말로 쓰이고 있다. 또 어떨 때는 별것도 아닌 사실을 가지고 집안의 보물인 것처럼 자주 들먹인다는 뜻으로도 사용되고 있다.

사건만 터졌다 하면 철저히 조사하여 엄단하겠다는 식의 말을 상투적으로 되풀이할 때도 쓰는 말이다.

술꾼들이 술을 먹는 핑계로 “술은 백약의 우두머리”라는 말을 자주 들먹일 때나, 보수층에서 진보 좌파를 ‘빨갱이’라고 몰아붙이거나 진보 측에서 보수 우파를 ‘꼴통’ ‘꼰대’라고 들이댈 때도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른다는 말을 쓴다.

그런데 요즘 직권남용죄를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른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전 정권의 적폐청산에서 가장 많이 적용한 것이 직권남용죄라고 한 것에서 나온 것이리라.

작금에 뉴스의 절반을 차지하다시피 하는 BH와 관련된 뉴스, 모 교수의 일가족과 관계되는 사건들에서 자주 들먹여지는 말이기도 하다.

그러면 직권남용죄(職權濫用罪)는 어떤 죄인가.

사전에 보면 공무원이 일반적인 직무 권한에 속하는 사항에 대해서 부당한 목적, 또는 부당한 방법으로 직무 본래의 취지에 반하여 직권을 행사하는 죄라고 되어 있다. 공무원이라야 직권남용죄가 적용되는 것이다.

공무원이 그 직권을 남용하여 시민으로 하여금 의무 없는 일을 행하게 하거나 사람의 권리행사를 방해하는 죄라는 말이다.

의무 없는 일을 행하게 하는 경우뿐 아니라, 부당하게 과중한 세금을 부과하여 납부케 하는 것도 포함된다.

가정이맹어호(苛政而猛於虎)란 말이 있지만 어느 정치가가 백성을 괴롭히고자 전가의 보도를 휘두르는 사람이 있겠는가. 자신의 권력을 더욱 공고히 하고자 전가의 보도를 빼 들었을 터이다.

더 중요한 것은 과거의 역사에서 정말 배울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할 줄 아는 사람, 조상님이 진정으로 후손에게 남기고자 한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전가의 보도를 함부로 휘두를 수 없을 것이다. 정말 서로 믿고 사는 세상, 서로 아끼는 세상, 그 속에서 행복을 느끼며 사는 세상이었으면 참 좋겠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어느 누구도 서로 믿지 못하고 의심하면서 사는 것 같다.

얼마 전 모 광역시장이 나와서 전방의 제설 작업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들었다. 눈이 올 때마다 치울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 까닭은 내일 또 눈이 내린다는 것.

이 양반이 참 모르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눈이 쌓이고 쌓이면 빗자루나 삽으로 될 일이 아니라 중장비를 동원해도 어렵게 될 것이다. 이런 적설이 적폐가 된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는 듯했다.

전 정권의 적폐 청산이 현 정권의 정의가 되어서도 안 된다. 적폐청산을 위해서 직권이 남용되어서도 안 된다. 적폐를 만들지 않는 것이 현 정권의 정의임을 다시 확인할 필요가 있다.

화해의 넓은 마음으로 새해를 맞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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