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염은 상징성이 크다. 다윈은 성적 선택(sexual selection)이 수염을 진화시켰다는 가설을 세웠다. 진화 심리학자들은 다윈의 이 수염진화 가설을 받아들인다. 미국 심리학자 에릭 에릭슨은 남자들이 수염을 기르고 난 뒤 더 남자다워진다는 느낌을 받는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이런 심리 때문인지 수염의 길이는 권위나 권력의 상징이다. 그리스 신화의 제우스, 이집트 신화의 오시리스도 멋진 수염을 가졌다. 중국에서도 수염이 잘 나지 않았던 촉한의 개국황제 유비는 ‘말끔한 얼굴이 마치 엉덩이 같다’는 놀림을 당한 반면 수염이 풍성했던 관우는 ‘미염공(美髥公)’으로 칭송했다. 동양의 그림 속 신선들은 하나같이 한 자나 되는 흰 수염을 휘날린다.

수염은 자존심의 상징이다. 고려 무신 정중부는 문신 김부식의 아들 김돈중으로부터 젊은 날 수염을 그을린 수모의 기억이 정변을 주도한 동기가 됐다. ‘정중부의 난’으로 자존심에 불 지른 김돈중 일가는 멸족했다. ‘유토피아’를 남긴 토마스모어는 영국 헨리 8세의 이혼에 반대한 끝에 참수형을 당하면서 사형집행관에게 당부했다. “수염은 반역죄를 저지른 적이 없으니 잘리지 않게 해달라”

최근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의 콧수염이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해리스 대사는 방위비 분담금이나 지소미아와 관련해 미국의 입장을 고압적 어조로 대변했다. 여기에다 문재인 대통령이 대북 개별관광 의사를 밝힌 데 대해 “미국과의 협의가 필요하다”는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이 같은 발언에 대해 청와대는 물론 여권과 통일부는 일제히 해리스 대사를 성토했다.

급기야 그가 기른 콧수염까지 ‘미운털’이 됐다. 해리스는 미 해군 태평양 사령관으로 재직했을 당시에는 수염을 기르지 않다가 2018년 7월 대사로 부임하면서 콧수염을 기르기 시작했다. 일제 시대 조선 총독 8명이 모두 콧수염을 기른 인물인데 하필 코밑에 수염을 기르고 부임해 왔다. 미 해군 장교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해리스의 콧수염은 한국인들에게 ‘일제 강압’의 기억을 되살리게 한다. 콧수염을 달싹거리며 강한 어조로 말하는 해리스는 그가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간에 ‘대사가 아니라 총독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동욱 논설실장 겸 제작총괄국장
이동욱 논설주간 donlee@kyongbu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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