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식 포항지역위원회 위원
이상식 포항지역위원회 위원

현대 사회에서 금융의 역할은 막중하다. 경제 활동이 원활히 이루어지는 윤활유 기능을 수행한다. 수요와 공급에 따른 생산·유통·분배·소비가 적절히 순환되도록 자금 이동을 돕는다. 물론 소규모 거래는 금융의 개입이 필요치 않으나, 대규모 결제는 금융 회사의 중개가 반드시 요구된다.

금융은 개인의 재테크 기회란 측면에도 긴요하다. 돈을 불리는 일은 모두들 관심 분야인 탓이다. 이는 일상생활 변화에도 감지된다. 한국소비자원 발표에 따르면, 사람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삼대 소비 생활 지표로 ‘식·주·금융’이 꼽혔다고 한다. 금융이 3위 안에 포함된 것은 조사가 시작된 이래 처음이다. 뭘 입을까보다는 어떻게 돈을 모을까에 관심이 바뀐 세태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보험과 증권을 포괄하는 개념인 금융의 상징은 단연 은행이다. 내가 입사했던 1980년대 은행권 주역은 ‘조상제한서’였다. 조흥 상업 제일 한일 서울은행을 일컫는 두문자어. 지금은 사라진 시중 은행의 강자이다.

세상에 영원한 존재는 없다고 하지만 이들의 부침을 보면 실감이 난다. 인생무상 아닌 은행무상이랄까. 조흥은행은 신한은행에, 서울은행은 하나은행에 합병됐다. 상업은행과 한일은행은 우리은행으로 탈바꿈했고 제일은행은 외국계로 넘어갔다. 평가 기관에 따라 다르나 요즘의 판도는 우리 국민 신한 농협은행이 주도하는 듯하다.

은행을 뜻하는 영어 ‘bank’는 이탈리아어에서 유래한다. 중세 이탈리아 도시엔 상업과 더불어 금융업이 번창했다. 당시 기독교 질서는 고리대금업을 금기시하였고, 업자들은 길거리 벤치에서 돈거래를 주고받았다. 또한 세상의 비난을 피하고자 수수료라는 명목으로 이자를 수취했다. 그들의 재력은 후원의 형태로 르네상스를 꽃피운 원동력이 되었다. 피렌체 금융업자 메디치가는 대표적 사례다.

전직 때문인지 은행 간판이 보이면 자신도 모르게 눈동자가 커진다. 특히 해외여행을 다니며 특별한 볼일이 없음에도 들어가서 이국적 분위기를 살피곤 한다. 한데 중국의 은행은 마음이 선뜻 내키지 않았다. 기다란 목봉으로 무장한 청경들 시선에 압도된 것일까. 어쨌든 쪼가리 가슴이 소심해졌다.

지난해 중국 서남쪽 허커우부터 서북쪽 우루무치까지 여러 도시를 탐방하면서, 세 번에 걸쳐 은행을 이용했다. 텔러와 환전상과 ATM을 섭렵했으니 경우의 수를 두루 경험한 셈이다. 우리완 다른 생소한 풍경이었다. 방탄유리가 설치됐고 유리 구멍으로 대화를 나누고 직원은 마이크를 사용한다.

세계문화유산인 리장에는 장쩌민 주석의 친필 휘호가 있는 물레방아 근처에 중국농업은행이 있다. 외화 교환 업무는 ‘중국은행’만 된다는 사실을 그때서야 알았다. 예금 금리 안내판이 놓였다. 일 년 만기 정기 예금 2.15%이니 한국과 비슷했다.

윈난성 성도인 쿤밍에선 암달러상 접촉을 하였다. 자의가 아니라 행원의 적극적 묵인이 있었다. 미화를 바꾸려고 창구에 갔더니 누군가 다가와 객장 의자로 이끌었다. 먼저 달러를 보자고 하더니 환율을 말했다. 은행원은 모른 척했다. 쓰촨성 성도인 청두에선 ATM으로 현금을 인출하였다.

새해부터 중국의 금융 시장이 개방된다. 보험과 선물과 증권 회사에 대한 외국인 지분 제한을 없애고 자유로운 영업이 가능해진다. 인구 14억 광대한 기회의 빗장이다. 한국의 금융인들도 신천지 개척에 적극 나서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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