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지게를 기억하시는지
아무리 가득 담아도 출렁출렁 흘리던 걸음
균형 하나가 제대로 잡히기까지
온전한 물통 속의 물은 손실이 크다
그래서 더욱 가득 담아졌던 물
미리 흘릴 균형까지 고려하고 담았었다
담긴 양이 제각각 달라도
물통에 남아있던 물은 늘 같은 양이었던가
균형은 어깨와 발걸음의 / 출렁거림이 아니라
물통의 그 수위에 있었다는 것

그러니까, 그때 / 나의 균형은 다 흘러넘쳤다
빈 것들의 속내일수록 휘청거리기 쉽다
더 이상 흘려버릴 균형추가 없는
나이가 될수록 균형을 지키는 것이 어렵다
가령, 팔이 자꾸 안으로 굽는 일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의 다툼 사이에서
균형은 또 그때처럼 흘러넘친다

봄, 바람이 출렁거리며 넘친 벚나무는 이미 바닥이 났고
평행을 유지하던 몸,
출렁거리던 옛 기억들도 감흥이 없다
그때, 오래도록 물이 다 새어나간
어깨가 살처럼 아프다




<감상> 어릴 적 나뭇지게, 물지게를 진 사람은 흔치 않을 겁니다. 엄청 넘어져서 무릎이 까지고, 바지가 다 젖어야 균형을 몸에 익히죠. 나무의 짐이 무거울수록, 물통에 물이 가득 찰수록 균형추를 갖추게 되었죠. 실제 지게를 져본 사람은 사회에 나와서 균형을 지키는 게 더 어려웠어요. 순수하고 진실한 균형추를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죠. 사람의 다툼 사이에서 늘 손해보고 깨지곤 했어요. 벚나무는 꽃잎을 떨어뜨릴 때 참 평행을 잘 유지하지요. 인간들의 아귀다툼은 그렇지 못하므로 어깨가 살처럼 아플 수밖에 없지요. 후생이 아닌 현세에 인과응보(因果應報)의 균형추는 잘 작동하고 있는지 묻고 싶네요. (시인 손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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