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여성의전화 가정폭력 상담, 정서폭력 43.6%·신체폭력 36.7%

대구에 거주하는 60대 여성 A씨는 지난해 초등학교 동창들과 함께 계획했던 제주도 여행을 포기했다. 여행을 떠나는 친구들의 신상과 전화번호, 여행일정까지 확인하던 남편이 술을 마신 후 여행을 가지 말라며 수차례 폭언을 일삼았기 때문이다.

A씨는 여행을 포기한 후에도 남편의 폭언을 감내해야 했다. 외출할 때마다 어디로 가는지, 누구와 만나는지 모든 일정을 설명해도 술만 들어가면 남편은 어김없이 A씨를 향해 욕설을 내뱉었다. 결국, A씨는 남편이 물리력을 행사하지 않지만, 정신적 고통에 시달리는 상황이라며 지역 내 상담소를 찾아 도움을 요청했다.

대구여성의전화가 지난해 진행한 가정폭력상담 가운데 A씨와 같은 정서적 폭력 사례가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년도 가정폭력상담에서는 신체적 폭력에 대한 상담 비중이 가장 높았는데, 1년 사이 정서적 폭력으로 상담을 받는 이들의 비중이 크게 증가한 것이다.

21일 대구여성의전화에 따르면, 지난해 접수된 가정폭력상담 건수는 총 452건으로, 정서적 폭력은 197건(43.6%), 신체적 폭력은 166건(36.7%)으로 조사됐다. 앞서 지난 2018년 진행된 총 522건의 가정폭력상담 가운데 신체적 폭력이 300건(57.5%), 정서적 폭력이 147건(28.1%)이었던 것과 대비된다.

대구여성의전화는 과거 물리력을 행사하는 직접적인 폭행만 가정폭력으로 인식했다면, 최근에는 정신적 고통을 주는 행위까지 가정폭력으로 인식하는 이들이 늘어난 것이라고 분석했다.

가정폭력 가해자는 주로 배우자다.

지난 한 해 동안 진행한 가정폭력상담 452건에서 배우자로부터 가정폭력을 받은 사례는 355건(78.5%)으로 파악됐다. 상담소를 찾은 피해자 10명 중 7명 이상이 배우자로부터 정신적·신체적 위협을 받은 셈이다.

가정폭력이 가장 많이 발생한 연령대는 40대(103건)다. 이어 30대(98건), 50대(92건), 20대(40건), 60대(38건), 19세 미만(4건) 순이다. 연령대를 파악하지 못한 피해자 상담 건수는 77건으로 집계됐다.

대구여성의전화는 지난해 접수된 가정폭력상담 이후 445건은 심리·정서 지원에 나섰고, 수사·법적 지원(94건)과 시설입소 연계(6건) 등을 병행했다.

김정순 대구여성의전화 대표는 “과거에는 가정폭력이 ‘집안일’, ‘부끄러운 일’이라고 생각하며 드러내지 않았다면 최근에는 피해자가 스스로 상담소를 찾아 가정폭력을 해결하려는 등 인식이 소통하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다”며 “정서적 가정폭력 상담 비중이 신체적 가정폭력을 넘어선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동안 가정폭력처벌법 목적조항의 가정유지·보호와 같은 관점이 가정폭력방지정책에 주요하게 반영돼 가정폭력은 다른 사람의 인권을 침해하는 범죄가 아닌 가정문제, 부부싸움 정도로 가볍게 인식될 수밖에 없었다”며 “가해자를 처벌하고 피해자를 안전하게 만드는 정책과 사회적 교육이 이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재용 기자
전재용 기자 jjy8820@kyongbuk.com

경찰서, 군부대, 교통, 환경, 노동 및 시민단체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저작권자 © 경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