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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시단] 날마다 설날
[아침시단] 날마다 설날
  • 김이듬
  • 승인 2020년 01월 22일 16시 48분
  • 지면게재일 2020년 01월 23일 목요일
  • 18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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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한 사람도 사랑하지 않으리
올해는 술을 줄이고 운동을 하리
계획을 세운지 사흘째 / 신년 모임 뒤풀이에서 나는 쓰러졌다
열세 살 어린 여자애에게 매혹되기 전 폭탄주 마셨다
천장과 바닥이 무지 가까운 방에서 잤다
별로 울지 않았고 별로 움직이지 않았다

날마다 새로 세우고 날마다 새로 부수고
내 속에 무슨 마귀가 들어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
주문을 외는지 / 나는 망토를 펼쳐 까마귀들을 날려 보낸다
밤에 발톱을 깎고 낮에 털을 밀며
나한테서 끝난 연결이 끊어진 문장
혹은 사랑이라는 말의 정의(定義)를 상실한다

설날의 어원은 알 수 없지만
서럽고 원통하고 낯선 날들로 들어가는 즈음
뜻한 바는 뺨에서 흘러내리고
뜻 없이 목 쉰 소리로 노래를 부르는데

한 사람도 사랑하지 않는 일은
백 사람을 사랑하는 일보다 어려운 이성의 횡포
수첩을 찢고 나는 백 사람을 사랑하리
무모하게 몸을 움직이지 않으며
마실 수 있는 데까지 마셔보자고 다시 쓴다

<감상> 낯선 날인 설날에 무수한 계획을 세우지만, 작심삼일(作心三日)이라고 사흘도 못 간다. 그대가 내 마음을 받아주지 않으니 한 사람도 사랑하지 않겠노라 다짐하지만, 사흘 못 가서 그대를 다시 사랑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술, 담배를 끊고 운동하겠노라고 다짐하지만 금세 무너지고, 설날처럼 계획을 변경하고 다시 쓴다. 탕왕(湯王)이 욕조에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을 새기듯, 뜻하는 바를 마음속에 새기지만 늘 이성과 몸은 따로 논다. 날마다 설날이거나, 아니 평생이 설날이거나 좀 더 나아지려는 간절한 마음은 변함이 없다.(시인 손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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