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선규 대구교대 교수
양선규 대구교대 교수

최근에 성전환 수술을 받은 한 군인이 강제 전역 조치를 당해서 큰 논란거리가 되고 있습니다. 명령에 반해서 본인이 강력하게 군 복무를 원하고 있어서 앞으로의 귀추가 주목됩니다. 남자에서 여자로 성(性)이 바뀌면 남군(男軍)에서 여군(女軍)으로 그 소속을 바꾸어서 근무하게 하면 될 것 아닌가 생각할 수도 있지만 ‘신체 훼손’, ‘심신장애’ 등 군인사법 상의 전역조치 항목에 해당이 되는 사항이라 군으로서도 어쩔 도리가 없다는 설명입니다. 일생을 건 한 젊은이의 결단을 사회가 포용하지 못하고 굳이 앞길을 가로막는 형국이라 그만한 자식을 둔 사람으로서 마음이 좀 짠합니다. 본디 성정체성은 세 가지 차원, 심리적, 생리적, 사회적 차원에서 규정됩니다. 심리학에서는 그중에서 심리적 성정체성을 가장 우선시합니다. 몸이 남자라도 마음이 여자이면 여자로 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그 마음의 건강성, 진정성인데 그것은 본인이 제일 잘 압니다. 성전환 수술을 받는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오랜 기간 동안 몸과 마음의 불일치에서 오는 정체성 고통을 받던 사람들입니다.

칼 융은 모든 인간이 양성적(兩性的)인 존재라고 설명합니다. 그가 만든 아니마(anima·남성 속의 여성적 요소), 아니무스(animus·여성 속의 남성적 요소)라는 개념도 그런 생각의 산물입니다. 현실적인 성정체성의 문제는 주로 젠더(gender·사회적 성정체성) 차원에서 발생합니다. 태어나서 가정, 학교, 사회에서 지속적으로 강요받는 것이 바로 젠더입니다. ‘남자답게’, ‘여자답게’라는 굴레가 평생 우리를 구속합니다. 그런 ‘~답게’가 끼치는 악영향은 이루 다 말할 수가 없습니다. 거의 모든 콤플렉스들은 결국 그 ‘~답게’의 강요에서 비롯된 것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남자(여자)답게’, ‘남편(아내)답게’, ‘어른(아이)답게’, ‘군인(여군)답게’ 같은 것들이 사람을 들들 볶는 것입니다. 그 어느 것 하나라도 사회적 기대보다 ‘~답지’ 못하면 콤플렉스를 키우게 됩니다. ‘소시오패스, 싸이코패스’라고 하는 이상성격도 사실은 그 ‘~답게’ 트라우마에서 비롯된 것일 공산이 큽니다. 칼 융은 그런 차원에서 아니마와 아니무스를 인격 형성의 한 고정 변수로 간주했습니다. 한 인간이 자기 안에서 겪는 최초의 불일치, 불화, 갈등, 대립이 바로 그것들로 인한 것이기에 남다른 주의 관찰이 요구된다고 주장했습니다.

인간은 사회적 존재이기 때문에 사회화를 거치면서 남자는 남자답게, 여자는 여자답게 성장해 나갑니다. 물론 여자 같은 남자, 남자 같은 여자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그런 사람들에게 적합한 사회적 역할이 부여됩니다. 나이에 따라서도 변화가 생깁니다. 중년을 지나면서 남자에게는 아니마가 강화(의식적 자아의 통제가 약화)되고 여자에게는 아니무스가 강화됩니다. 그동안의 억압 스프링이 헐렁해지기 시작합니다. 나이 들어서 TV드라마를 보면서 눈물을 흘린 경험을 이야기하는 주변 친구나 동료들을 자주 봅니다. 저 자신도 물론 그런 경험이 있습니다. 모두 아니마가 자신의 활동 영역을 급격히 넓히고 있기 때문입니다. 갱년기 여성들의 히스테리도 결국은 호르몬의 부조화로 인한 아니무스의 자기 영역 확대라고 설명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남자들은 바빠도(젊어서부터) 예술활동에 투자를 하면서 살고, 여자들은 정치나 스포츠에 관심을 표하면서 살 것을 심리학에서는 권합니다. 그렇게 틈틈이 아니마와 아니무스를 달래 놓으면 준비 안 된 상태에서 그들의 공격을 받는 일이 줄어듭니다. 제 경험으로는 그 둘과 늘 함께 동반(同伴)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서로 서먹해하면서 불편해 하지만 10년이 가고 20년이 가면 원래 하나였던 것처럼 화목하게 잘 지내게 됩니다. 나이 들수록 꿈자리도 훨씬 편안해집니다. 내 안의 화이부동(和而不同)이라고나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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