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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광장] '보통 사람’은 ‘인재’가 될 자격이 없는가
[아침광장] '보통 사람’은 ‘인재’가 될 자격이 없는가
  • 원태준 포스텍 인문사회학부 교수
  • 승인 2020년 01월 29일 15시 27분
  • 지면게재일 2020년 01월 30일 목요일
  • 18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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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태준 포스텍 인문사회학부 교수
원태준 포스텍 인문사회학부 교수

영국 노동당의 역대 당수 중 가장 급진적인 좌파주의자로 여겨지는 제레미 코빈(Jeremy Corbyn)과 그의 당의 지지율이 작년 12월 영국 총선을 코앞에 두고 보리스 존슨(Boris Johnson) 총리의 보수당에 밀리자, 가수 스톰지, 배우 휴 그랜트, 전직 축구선수 게리 네빌, 디자이너 비비안 웨스트우드 등 세계적인 명성과 인기를 자랑하는 수많은 영국의 명사들이 코빈에 대한 지지를 공개적으로 천명하며 영국 국민들이 노동당에게 표를 줄 것을 호소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유명 인사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노동당은 총선에서 1935년 이래 최악의 성적을 거두었다. 물론 노동당의 참패에 있어 ‘브렉시트’ 및 당내의 ‘반유대주의’에 대한 코빈의 애매모호한 태도가 가장 중요한 원인이었다는 것에는 이견이 없다. 하지만 수백억 원, 심지어 수천억 원의 재산을 보유하고 일반인은 상상하기 힘든 럭셔리 삶을 누리는 슈퍼스타 연예인들이 ‘영국 및 전 세계에서 나타나고 있는 불평등, 방치 및 환경 파괴의 심각한 수준에 수치심을 느낀다’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 노동당을 선택해달라고 애원하는 공허한 외침 또한 영국의 일반 유권자들의 마음을 돌리는 데에 실패하였다.

대한민국의 4월 총선을 겨냥하여 여러 정당들이 공을 들여 영입하는 인재들은 물론 연예인들도 아니고 엄청난 유명 인사들도 아니다. 그러나 교통사고로 입은 장애를 극복한 여교수, AI 스타트업 창업자, 전직 고위급 장성, 전직 공익제보 판사, 방위산업 전문가, 목발 짚은 탈북자 인권 운동가, 기초의원 출신 정치평론가, 극지 탐험가, 이미지 전략가 등 일반인이 상상하기 힘든 역경을 딛고 일어선 사람, 치열한 경쟁을 뚫고 자신의 분야에서 독보적인 존재가 된 사람 등 이런저런 이유로 언론의 조명을 받기에는 충분한 인물들이 대거 영입되었다. 이렇게 영입된 사람들이 그 자리에 있기까지 겪었던 고통의 심도나 들였던 노력의 가치는 존중받음이 마땅하다. 하지만 초인적(超人的)인 인내력과 의지를 발휘해 한국 사회에 한 획을 그은 인재들의 대규모 영입이 일반 국민의 마음을 움직이기에는 영국 노동당을 찍어달라는 슈퍼스타들의 호소만큼이나 동 떨어져 있고 경우에 따라 뜬금없기까지 하다. 정당은 일반 국민이 일상생활에서 겪는 고초와 억울함 등을 정치의 장(場)을 통하여 해결하기 위하여 존재해야 하는 단체이다. 일반 국민의 고초와 억울함에 대해 얼마나 잘 이해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을 하고 있느냐에 대해 정당은 평가를 받고 집권의 기회를 얻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일반 국민이 공감하기 어려운 고통을 당하거나 일반 국민은 오르기 힘든 정상에 도달한 ‘휴먼 스토리의 주인공들’만 선보이는 이유가 무엇인가. 이런 슬픔과 역경을 겪은 사람들도 있는데 일반 국민들은 그에 비하면 사정이 낫다는 평가를 하고 싶은 것인가? 사회가 어렵다고 하지만 그 어려움을 슬기롭게 극복하는 인재들도 있는데 일반 국민은 왜 그렇게 못 하는 것인지를 타박하는 것인가? 불공정, 불평등한 사회가 정당한 기회를 박탈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이런 인재들만큼 노력하지 않고 의지가 약한 당신들의 부족함을 변명하는 핑계라고 면박을 주고자 하는 것인가?

정당은 일반 국민과 함께 걷고 함께 호흡하고 있음을 보여 주어야 한다. 각박하고 용서 없는 우리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하여 매일 발버둥 치는 수많은 국민들을 가까이에 두고 그들의 염원과 희망을 항상 염두에 두고 있음을 보여 주어야 한다. 국민의 눈높이에 맞지 않는 ‘감성팔이’ 인재 영입은 이제 식상하다 못해 거부감마저 든다. 지금 대한민국의 정당들이 진정으로 필요로 하는 ‘인재’는 온 국민이 우러러 봐야 하는 위인이 아닌, 세상을 향하여 치열한 전투를 치르기 위해 오늘도 집 밖을 나서는 ‘보통 사람들’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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