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산서당은 1984년 7월 25일 대구광역시문화재자료 제15호로 지정된 도심속에 남아있는 우리의 문화재이다.

1984년 7월 25일 대구광역시문화재자료 제15호로 지정되었다. 정확한 건축연도는 알 수 없으나 퇴계(退溪) 이황(李滉)과 우복(愚伏) 정경세(鄭經世)가 이곳에서 강학한 바 있으므로 1500년대 이전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서당 뒤편의 옛 사당터에 이황과 정경세의 강학유허비(講學遺墟碑)가 세워져 있다.

조선 명종 때에 지방 유생들과 윤희렴(尹希廉)이 재실을 짓고 이황에게 재호(齋號)를 청하여 재(齋)는 고산(孤山)으로, 문(門)은 구도(求道)라고 한 친필을 받았다. 당시 구도라고 쓴 편액은 지금도 남아 있다.

1868년(고종 5)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된 이후 1879년(고종 16)에 지방 유림들을 중심으로 강학계를 조직하여 옛터에 강당만 다시 중건하여 고산서당이라 편액하였다. 1964년에 중수하였다.

퇴계 선생과 우복 선생이 학문을 닦고 배움에 정진하며 후학들을 가르쳤던 학문의 요람이었던 고산서당을 영삼에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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