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식 포항지역위원회 위원
이상식 포항지역위원회 위원

결혼 하면 선남선녀를 연상하듯 은행 하면 돈을 떠올린다. 낚시를 드리운 강태공처럼 돈의 흐름을 주시하며 돈을 다잡는 곳이기에 의당 그러하다. 간혹 생명만큼 소중한 돈. 더러는 무섭다고들 한다. 일부는 더럽다고들 한다. 누구는 힘이라고들 한다. 모두들 가지려고 한다. 유일한 신앙처럼 한가득 품으려고 한다.

녀석은 혈액처럼 흘러 다닌다. 똥개처럼 시궁창을 뒤지다가 들개 마냥 사회를 비웃는다. 도둑처럼 여기저기 기웃거리다 장롱 속에 잠들기도 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를 전염병처럼 떠돌다가 손때 절은 몰골로 금고에 되돌아온다. 포승줄에 묶인 죄인처럼 다발로 엮여 수명을 다한다.

제각각 가열한 인생을 살아오듯 그네들도 어디선가 뒤안길을 헤매다가 최후의 귀향처럼 나타났으리라. 때로는 냉정하게, 이따금 다정하게 인심을 다독이며 천지를 여행했으리라. 희로애락 별의별 세태를 겪었으리라.

사도 바울은 돈의 폐해를 강조했다. 돈을 사랑하는 것이 모든 악의 뿌리라고 설파했다. 과연 그럴까. 녀석이 그런 불명예를 뒤집어쓸 까닭이 있을까. 금력은 두 얼굴의 야누스처럼 명암을 가졌기에 그 주인의 심성이 중요하다. 마치 산골짝 샘물을 독사가 마시면 맹독이 되고, 산양이 마시면 양유가 되듯이 말이다.

재물을 다루는 합리적 사고는 유대교에서 기원한다. ‘세상의 눈에 아름다운 것이 일곱 가지가 있다. 그중 하나는 부다.’ 탈무드에 나오는 말이다. 유대인은 대금업을 경원시하지 않았다. 가진 돈으로 이익을 얻는 것은 가축을 기르고 곡식을 수확해 수입을 버는 행위와 비슷한 개념으로 여겼다.

유대 민족은 오랫동안 디아스포라로 유랑하면서도 고유의 정체성을 지켰다. 옥죄는 역경과 도전을 이겨낸 원천은 바로 모세 율법과 탈무드와 토라였다. 그들에게 허용된 유일한 직업은 상업이었다. 장사를 하면서 부자가 되었고 금전을 융통해 주었다. 그런 이유로 미움을 샀고 박해가 따랐다.

이문을 받는 대부업은 역사가 유구하다. 오천 년 전부터 존재했다니 인간의 삶에 유용한 듯하다. 메소포타미아 문명은 채권 채무에 관한 거래 내용을 적고자 쐐기문자를 발명했다고 한다. 이자는 장구한 만큼이나 부정적 시각이 뿌리 깊다.

구약성경 군데군데 이를 죄악시하는 구절이 보이고, 신약 성서에도 돈을 대여할 때는 대가를 바라지 마라는 가르침이 나온다. 이슬람 경전인 쿠란에는 이자 금지에 관한 경구가 12번이나 등장한다. 중세 기독교 질서에서 고리대금업은 주로 유대인이 담당했다. 셰익스피어 희곡 ‘베니스의 상인’은 유대인 샤일록을 악독한 전주로 그렸고, 단테의 ‘신곡’에는 지옥에 떨어질 중범죄로 묘사했다.

어쨌든 돈은 잘못이 없다. 있다면 인간의 탓이다. 돈이 많으면 행복할 것 같으나 막연한 상상일 뿐이다. 재력과 행복이 비례하지 않는다는 연구 결과는 차고 넘친다. 돈의 만족감은 결코 다다익선이 아니다. 아마도 부자의 웃음은 그것으로 향유할 누군가 곁에 있기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무엇보다 돈은 자신이 아닌 남을 위해 쓰라고 얘기한다. 이는 사례로 검증된 현상이다. 나의 물건 구입보다는 너의 선물을 샀을 때가 행복도가 높다. ‘소확행’은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뜻하는 신조어. 소소한 구매를 여러 차례 하는 것도 방법이다. 또한 물건이 아닌 경험을 공유하라고 권한다. 옷보다 여행이 났다는 의미다. 좋은 추억을 남기는 소치이다.

저작권자 © 경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