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 도시의 무한한 가능성…인간의 도전정신 바닷길 개척하며 신세계 열어나가

세계에서 세번째로 큰 세비야 성모 마리아 주교좌 대성당 외관. 건물 입구에 오렌지 나무가 늘어선 오렌지 정원이 펼쳐져 있다. 곽성일 기자
세계에서 세번째로 큰 세비야 성모 마리아 주교좌 대성당 외관. 건물 입구에 오렌지 나무가 늘어선 오렌지 정원이 펼쳐져 있다. 곽성일 기자

인류의 문명은 강에서 시작돼 바다로 진출해 융성했다. 강물이 바다로 흘러가듯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강가에 모여 살던 인간들은 점차 인구가 늘어나고 의식주 해결에 한계를 느껴 더 큰 바다로 향하게 됐다. 그들에게 바다는 두려움의 대상이었지만 인간의 끊임없는 도전 정신과 경험의 축적이 바닷길을 개척하면서 신세계를 열었다.

예나 지금이나 도시와 국가는 바다로 진출하지 않고는 문명을 진보시킬 수 없다. 그래서 늘 바다로 향해 열려 있어야 한다. 내륙에서 안주하면 미래를 보장받을 수 없는 시대이다. 바다는 천혜의 보고이자, 다른 세계와 연결해 주는 소통과 공감의 길이기도 하다. 바다와 인접한 도시는 해상 무역 등으로 나라 경제를 살리고 새로운 문물을 끊임없이 받아들이는 지식 공유의 장소이자, 문화의 교환 거래의 장이기도 했다.

따라서 이들 해상도시는 국가 경제의 주춧돌 역할을 하고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가 됐다. 이베리아반도의 에스파냐와 포르투갈은 지중해 중심의 세계에서 변방으로 소외돼 당시에는 지옥의 바다로 불리던 대서양을 개척해 일약 세계의 중심으로 도약했다. 현재 상황에서는 도저히 어려움을 타개할 길이 보이지 않자, 누구도 가지 않았던 길을 가서 선구자만이 가질 수 있는 특혜를 누렸다. 절박함이 새로운 세계를 열고 인류 역사의 새로운 장을 펼친 것이다.

세비야는 콜럼버스가 이사벨 여왕의 후원으로 신대륙 항로 개척을 떠났던 출발지이다. 대서양 항로 개척에 성공하자, 신대륙에서 금을 비롯한 각종 광물과 식료품 등이 세비야로 들어오면서 번성을 구가했다. 지중해에 인접한 발렌시아도 일찍부터 바다의 영향을 받아 번창했다.

신라시대 포항에서 일본으로 건너가 해와 달이 된 연오랑세오녀도 바닷길을 개척한 선구자이다. 포항시도 이들의 진취적인 기상을 이어받아 북방과 해양진출의 원대한 꿈을 실현해야 하는 역사적 사명이 있다. 또 연오랑세오녀 테마파크를 비롯한 연오랑세오녀를 관광자원으로 특화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세비야 대성당 내부 이탈리아 출신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의 묘 . '죽어도 스페인 땅을 밟지 않겠다'는 그의 유언에 따라 공중 조형물의 묘가 생겼다. 곽성일 기자
세비야 대성당 내부 이탈리아 출신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의 묘 . '죽어도 스페인 땅을 밟지 않겠다'는 그의 유언에 따라 공중 조형물의 묘가 생겼다. 곽성일 기자

△열정의 도시 세비야

에스파냐 남부 안달루시아는 태양이 강렬했다. 겨울 한낮 세비야는 겨울 햇살이 가득했다. 이곳은 신대륙 항로 개척이 시작된 곳이다. 대서양에서 과달카비르 강 10㎞를 거슬러 오른 곳에 자리 잡았다.

콜럼버스가 이곳에서 대서양 대항해를 출발했다. 그는 대서양을 건너 아메리카 반도에 처음으로 도착했다. 신대륙 발견이라고 역사는 말하지만 동의할 수 없다. 그곳엔 오래전부터 원주민이 살고 있었다. 그들이 그 대륙의 오랜 주인이었던 것이다. 신대륙 발견은 유럽인의 세계관에서 비롯됐다. 그들은 대륙에서 금을 찾는 탐욕으로 부를 이뤘지만, 원주민들의 삶을 송두리째 뽑아 버렸다.

대항해 시대의 영웅 콜럼버스는 대륙에 도달은 했지만, 금 찾기에 실패하면서 자기 뜻을 이루지 못하고 세비야 대성당에 묻혔다. 세비야는 콜럼버스 출발 기념탑과 강 옆 거리를 콜럼버스로 명명했다.

한반도에서 일본으로 건너가서 해와 달이 된 연오랑과 세오녀가 출발한 곳은 포항이다. 포항도 세비야와 같이 연오랑세오녀 출발을 기념하는 상징물을 건립했으면 한다.

플라멩코와 오페라 둥 예술의 도시 세비야는 안달루시아 대표 도시이다. 세비야 한가운데에는 스페인 최대의 성당이자 유럽의 3대 성당의 하나인 세비야 대성당이 있다. 15세기에 이슬람을 정복한 기독교도들이 8세기에 건설된 모스크 위에 지은 성당이 바로 세비야 대성당이다. 고딕양식의 건물이지만 모스크였던 시절의 자취들을 품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대표적인 것이 바로 히랄다 탑이다. 무슬림들의 기도시간을 알리는 미나레트에 28개의 종을 달고 고딕식 지붕을 얹은 것이다.

히랄다 탑과 함께 세비야의 또 하나의 상징으로 손꼽히는 마까레나 성당의 가장 큰 특징은 '눈물 흘리는 성모마리아'에 대한 강렬한 애정이다.

화려하고 정열적인 춤과 음악인 플라멩코의 다른 얼굴은 슬픔과 한이 서린 비극적인 정서이다. 소외와 박해를 거듭 당해온 집시의 역사가 이 춤에는 녹아있다. 플라멩코의 기원은 단순하지 않다. 플라멩코는 자신이 생겨난 곳, 안달루시아의 수많은 민속 음악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세비야에서는 정기적으로 플라멩코 비엔날레가 열린다. 안달루시아의 정서와 집시들의 감각이 만나면서 만들어진 이 장르에는 수많은 피가 섞여 있다. 인도에 기원을 두고 유럽을 떠돌다가 안달루시아에 들어온 집시들의 피. 그리고 오랫동안 그곳에 있었던 땅, 안달루시아의 피.

세비야는 플라멩코의 본고장이다. 마에스뜨란사 공연장(Teatro de la Maestranza)에서 2년마다 플라멩코 예술 비엔날레가 열린다. 비엔날레 시즌에 방문하지 않았다고 훌륭한 플라멩코를 볼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이곳에서는 작은 바에서 대형 오페라극장까지 도시 전역의 다채로운 장소에서 플라멩코를 만날 수 있다.

산타크루스 거리를 중심으로 훌륭한 타블라오스, 즉 플라멩코 클럽들이 포진해 있는데 전문적인 공연은 식사와 함께 즐기는 ‘로스 가요스(Los Gallos)’ 같은 타블라오스나 좀더 저렴하게 공연 위주로 진행되는 아우디토리오 알바레스(Auditorio Alvarez Quintero) 같은 곳에서 만날 수 있다.

플라멩코를 이루고 있는 것은 바일레 플라멩코(춤)뿐 아니다. 칸테 플라멩코(노래)와 토케 플라멩코(기타)를 포함한다. 그중에서도 중심이 되는 것은 의외로 칸테 플라멩코. 그러므로 화려한 춤보다 심금을 울리는 노래에 먼저 귀를 기울여보는 것도 좋겠다. 칸테와 바일레, 토케를 맡은 예술가들을 각각 칸타오르, 바일라오르, 토카오르라 부른다.
 

유럽 최대 규모 과학 예술 전시관인 발렌시아 예술과학종합단지 야경. IMAX 상영관(오른쪽) 뒤편으로 레이나소피아예술궁전이 보인다. 곽성일 기자
유럽 최대 규모 과학 예술 전시관인 발렌시아 예술과학종합단지 야경. IMAX 상영관(오른쪽) 뒤편으로 레이나소피아예술궁전이 보인다. 곽성일 기자

△건축과 야경의 예술도시‘발렌시아’

지중해의 온화한 겨울 밤바람이 불어오는 발렌시아의 야경은 탄성을 저절로 나올 만큼 환상적이었다.

발렌시아 예술과학복합단지의 예술적인 건축에서 투영되는 화려한 조명은 마치 무릉도원에 온 듯한 감상에 젖어들게 했다. 아름다운 건물의 불빛이 물에 반사된 야경은 발걸음을 멈추고 넋을 잃게 할 정도였다.

발렌시아는 화려함만이 있는 곳이 아니었다. 고색창연한 대성당은 은은한 가로등과 함께 발렌시아의 밤과 역사를 품고 있었다. 시대별 건축이 진행돼 한곳에서 여러 시대 건축을 볼 수 있는 대성당은 밝지도 어둡지도 않은 조명을 받으며 중세로 걸어온 듯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발렌시아시는 발렌시아 대성당과 8각형의 미겔레테 종탑(1381~1429)을 비롯해 ‘100개의 종탑도시’라 불릴 만큼 종교 건축물이 풍부하며, 토렌트의 아숨프시오 교회(Esglesia de l‘Assumpcio), 간디아의 두칼 데 간디아 궁(Palacio Ducal de Gandia)과 시청 청사, 사군토의 로마 시대 극장, 파테르나의 도자기박물관, 알시라의 16세기 르네상스 양식의 시청 청사, 토레비에하의 인마쿨라다 콘셉시온 교회(Iglesia Arciprestal de la Inmaculada Concepcion), 베니도름의 푼타 델 카발 탑(Torre Punta del Cavall), 엘다의 엘다성(城), 카스테욘 데 라 플라나의 14세기 고딕 양식의 산타마리아 교회 등의 명소가 있다.

곽성일 기자
곽성일 기자 kwak@kyongbuk.com

행정사회부 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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