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삼문 금오공과대학교 외래교수
권삼문 금오공과대학교 외래교수

『일선지』의 백미(白眉)는 인물에 관한 기사들이다. 좀 과장하면 우리의 ‘사기 열전’이라 할만하다. 2권「인물」편은『일선지』의 1/4 분량이며, 3권 행장과 묘갈, 4권 잡저, 행장, 제문, 만장, 시 등 인물 관련 기사를 포함하면 전체의 3/4 혹은 4/5가 선산 관련 인물에 관한 이야기 들이다.

『일선지』를 연구한 금오공과대학교 박인호 교수에 따르면, 인물 관련 항목에 수록된 인물의 수는 후비 4, 선현 12, 훈열 234, 숙행 34, 기예 2, 효자 11, 열녀 7 [신증] 효자 3 열녀 17 등 총 324명이 수록되어 있다.(「선산 읍지 『일선지』의 편찬과 편찬정신」『歷史學硏究』 제64집 2016.)

『사기』저자 사마천이 ‘태사공은 말한다’라며 기사의 말미마다 자신의 견해를 밝힌 바와 달리,『일선지』의 저자인 인재 최현은 의견을 별로 제시하지 않았다. 하지만 필요한 경우 더러 다음과 같이 자신의 입장을 보여 주고 있다.

문적이 병화로 흩어지고 잃어버렸으며, 견문이 멀리까지 미치지 못하여, 다만 지리지(地誌)에 기재되거나, 노인들이 전하거나, 여러 문집에 나오는 것으로써 기록하니 누락을 면하지 못하였다. 훈열 이하는 비록 그 제목을 달리하기는 했으나, 후인의 얕은 견해로 품평하기 어려운 까닭으로 세대의 차례에 따라 썼으니 보는 사람이 스스로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이다. 또 고향은 아니나, 대대로 토성(土姓)으로 경향안(京鄕案)에 기록된 사람이나, 비록 다른 곳에 우거했으나, 처향, 외향이어서 전택과 왕래의 자취가 있는 이에 대해서, 아울러『여지승람』과『상산지』에 의거하여 뚜렷하게 일컬을 만한 사람을 기록했는데, 오직 세상에 살아 있는 사람은 짐짓 기록하지 않았다.

애초 ‘『일선지』다시 읽기’를 시도한 까닭이, 잘 모르고 있었던 선산의 인물을 알게 된 것이 호기심을 자극하였고. 나아가 당대의 지식인이 향토 인물에 대한 평가를 어떻게 하였는가? 라는 궁금증 때문이었다.

조선시대의 한때를 풍미하였던, ‘조선 인재 반재 영남(朝鮮人才 半在嶺南) 영남 인재 반재 일선[선산](嶺南人才 半在一善[善山])’라는 유명세를 따라서, 이제까지 선현에 대한 학술대회를 열고, 책자를 발간하는 등 다양한 경로를 통해 소개되어 왔다. 여기에서는 이들 잘 알려진 선현에 대한 관심을 접고, 우리가 새롭게 봐야 할 별로 알려지지 않은 인물에 대해서 살펴보고 논의의 대상으로 삼고자 한다.

일선지에 수록된 선현은 야은 길재, 농암 김주, 단계 하위지, 경은 이맹전, 강호 김숙자, 점필재 김종직, 한훤당 김굉필, 신당 정붕, 송당 박영, 용암 박운, 진락당 김취성, 대곡 성운 등이다. 물론 이름이 생소한 독자도 있겠지만 대개 전국적인 유명인물로 쉽게 그 인물의 정보를 접할 수 있다.

조선시대 선산에는 ‘선산 김씨’라고 표기하던 두 집안이 있었다. 그 내력의 사실 여부는 논외로 하고 앞으로의 논의에서 혼란을 피하기 위해, 선산[일선] 김씨와 선산 김씨로 표기를 한다. 앞의 선산[일선] 김씨는 고려시대에도 선산에 살았던 집안이며, 뒤의 선산 김씨는 여말 선초에 선산에 들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조선시대 과거합격자의 명단인『문과방목』에는 이 두 성씨를 구별하지 않고 ‘선산 김씨’라고만 표기되어 있다. 선산[일선] 김씨의 유명 인물은 사예 김숙자, 점필재 김종직으로 대표되며, 선산 김씨의 경우에는 진락당 김취성, 문간공 김취문 등이다.

유명한 인물을 두고 굳이 다른 인물을 거론하는 까닭은 우리의 편향된 역사문화 인식에 자극을 갖고자 함이다. 과거를 고의적으로 이용하고자 하는 태도를 경계하기 위해 우리도 여기서 과거를 고의적으로 이용하는 것이다. ‘어느 편에 서 있는가?’를 분명히 밝히지 않는 것이 객관적인 역사 서술이라고 한다. 과연 그런지 필자는 심각히 의심하고 있다. 미국 역사학자 하워드 진(Howard Zinn·1922-2010)이 ‘달리는 열차 위에 중립은 없다’고 선언한 이래 그 말을 의심한 적이 없고, 따르려고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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