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담는 항아리는 / 천 개의 색을 모으는 중이다
무채색 주둥이까지 포함하니까
구부리고 번지는 밀물까지 돌과 함께 물렁해져서
어딘가 스며들어야 하는 해안선이 되었다

소년의 표정이 왔다 / 하늘가에 인기척이 수런거리더니
아침 식탁에 별자리를 펼치는 린넨

꽃 사이에 꽃의 생활을 심고 / 돌 속에 다시 돌을 옮긴다
꽃은 희고 돌은 검다가 / 둘이 합쳐서 가슴까지 검푸르다

비거스렁이 하품과 거품이 / 썰물을 부추기며
무시로 글자를 쓰다 지운다 싶은데
동심원이 모였다
물의 관습이라는 결혼의 상냥한 목소리가 들렸다
물기 흥건한 / 계절이 아니라면 여기 오래 머물겠지만
이름을 잊었기에 무엇이나 포옹하는
이 아침의 긴 역광을 / 어디 눈썹 없는 기별만 탓하랴

십 년 후를 만날 때까지 / 물결이 굳어질 때까지


<감상> 아침을 담는 바다는 항아리의 모습을 닮았다. 바다는 한 가지 색을 보여주지 않고 물렁해져서 해안선까지 끌어안을 수 있다. 그리고 순수한 소년의 표정으로 생물인 꽃과 무생물인 돌까지 어울려 논다. 비갠 후 하늘 바람이 불면 썰물이 밀려나가고, 그대를 사랑한다는 말과 표식(標式)이 둥글게 모인다. 물이 모든 걸 담을 수 있는 것은 제 몸이 몰랑해서이고, 습관적으로 사물의 경계를 무너뜨려 결혼을 성사시키기 때문이다. 이름으로 불리기 전이거나 이름을 잊었거나 무엇이나 기억하는 바다는 눈썹이 없다. 십년 후 아니 천년 후에도 물결은 굳어지지 않으므로. (시인 손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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