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부 재택근무 허용’ 청와대 국민청원 하루 만에 300여명 동의
"혼자만의 몸 아니어서 공포"…베이비페어도 대부분 연기·취소

마스크 쓴 시민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확산이 우려되는 가운데 29일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시민들이 마스크를 쓰고 걸어가고 있다. 연합

“홑몸이었다면 이렇게까지 걱정되고 무섭진 않을 거예요. 배 속의 아기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에 더 예민해지는 거죠. 마스크 없이 기침하는 사람들을 보면 화가 나요.”

경기도 하남에 사는 임신부 송모(33) 씨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신종 코로나) 확산이 불러온 자신의 일상 변화를 떠올리며 깊은 한숨을 쉬었다.

이번 사태 이전에도 임신부로서 매사에 조심스럽기는 했다. 신종 코로나 소식을 접할 때마다 마음을 졸이던 송 씨는 확진자가 19명으로 늘어난 5일 현재는 바깥 활동을 최대한 자제하면서 외출이 불가피할 경우에는 인적이 드문 길로 걸어 다니고 있다.

신종 코로나 사태가 확산하면서 건강 문제에 특히 예민할 수밖에 없는 임신부들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직장인 김모(37) 씨의 아내는 임신 10주 차다. 그는 요즘 역시 직장인인 아내의 운전기사를 자처하고 나섰다.

김 씨는 “감염자가 언제, 어디를 돌아다니고 있는지 아무도 모르는 상황에서 임신한 아내가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게 놔둘 수는 없다”면서도 “나도 엄연한 회사원이라 평일에는 운전기사 역할을 하기가 정말 부담스러워 언제까지 이런 생활이 가능할지 막막하다”고 털어놓았다.

임신부 직장인의 이 같은 애로점을 반영하듯 최근 ‘임산부들의 재택근무를 허용해달라’는 내용의 청와대 국민청원도 등장했다.

청원인은 “모두가 불안한 시국이라 특혜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혼자만의 몸이 아닌 임산부들은 공포가 배(倍)”라며 “우리 미래를 이끌어갈 아이들을 지킬 수 있게 해달라”고 호소했다.

지난 4일 시작한 이 청원에는 하루 만인 5일 오후 5시까지 328명이 동의했다.

일반 환자 이송시키는 질병관리본부 관계자 국내 18번째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진 환자가 발생한 광주21세기병원에서 5일 오후 질병관리본부 관계자들이 병원 내에 격리됐던 일반 환자들을 다른 격리장소로 이송시키고 있다. 연합

임신부들은 각종 검진을 받으러 병원에 가기도 조심스럽다.

이모(33) 씨는 “병원이나 조리원에서 외부인의 출입을 자제시키고 있지만, 어떤 위험성이 있을지는 아무도 몰라 두렵다”며 “임신 중에는 약 하나 먹기도 조심스러워 각종 환자가 드나드는 병원에 가기가 꺼려진다”고 말했다.

신종 코로나 확산으로 이달 중 전국 곳곳에서 열릴 예정이던 출산·육아 박람회(베이비페어)는 대부분 연기 또는 취소됐다.

이에 임산부 부부 또는 아기 부모들은 대체로 당연한 조치라는 반응을 보였지만, 출산·육아와 관련한 유용한 정보를 얻고 육아용품을 저렴하게 구매할 기회가 없어져 아쉽다는 이들도 있다.

임신부들이 모인 인터넷 카페에도 신종 코로나에 대한 두려움을 호소하는 글이 쏟아지고 있다.

인천에 살며 서울에 있는 직장을 다닌다는 한 회원은 “매일 공항철도를 타고 공포의 출퇴근을 하고 있다”며 “임신부 휴직이라도 있으면 좋겠다”고 적었다.

다른 카페에서는 임신 15주 차라는 한 회원이 “신종 코로나 때문에 난리인데 기차 타고 친구 결혼식에 가면 위험할까요?”라고 묻자 “가지 말라”, “친구에게 양해를 구하고 축의금만 내라” 등의 댓글이 잇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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