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밥 한번 먹자라는 말의 순도는 친밀도와 비례합
니다. 공식입니다만 공식적인 것엔 도금된 경우가 많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가까이 사는 나무의 잎들은 빈
번히 접촉하지만 서로의 영양분을 공유하지는 않습니다.

틈 될 때 커피 한 잔 하자는 말보다는 언제 잠깐 몸
좀 빌려 쓰자고 하는 게 낫습니다. 택배 차량에서 잠시
만났다 헤어지는 화물처럼 우리는 만나고 이별합니다. 몸
만 사용하는 게 가능하지 않다면 감정은 혈액이 흐르는
외투일 것입니다. 감정을 벗고 만날까요. 어떤 경우에도
감정을 전당포에 맡기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가슴 뛰는 설렘 속에는 이미 괴로움이 발생했습니다. 그림자는 향기를 복사하지 못합니다. 마음은 바빠서 몇 생을 후딱 딴 살림 차렸다가 돌아오기도 합니다. 시소의 양 끝에 놓인 듯 오르내리는 감정들을 바라봅니다.



<감상> 정년퇴직한 사람의 가장 측근인 분이 내게 물었다. 퇴직한 사람이 시인인데도 밥 한 끼 사지 않느냐고? 나는 매년 “반장, 부반장한테 1년간 고생했다고 짜장면 사주는데요.”라고 대답했다. 밥 한번 막자라는 말은 친밀도를 가장한 위선이자, 상대방을 순응케 만드는 주문(呪文)이다. 차라리 몸 빌려 쓰자고 하는 게 낫지, 떠난 후에는 가능성이 제로입니다. 현역에 있을 때 설사 밥 먹으로 함께 갔다 해도 밥값을 절대 내지 않습니다. 진정성이라곤 없는 가면이자 외투에 지나지 않는 말은 이제 하지 맙시다. 떠난 후에는 느낀다죠. 립서비스(lip service)가 향기를 불러오지 못하는 그림자에 지나지 않음을. 그러니 가진 자들이 밥 한번 사지 않고 얻어먹기만 하므로 더 오래 사는지 모릅니다. 후생에는 더 불가능하니 몸으로 갚고 떠나라고. (시인 손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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