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문화 콘텐츠 재정비…2천만 관광객 시대 날개

영덕군은 문화재청 ‘근대역사문화공간 재생활성화사업’에 최종 선정돼 올해부터 2024년까지 5년간 역사문화공간 내 문화재보수사업 등을 추진한다. 사진은 영덕영해양조장 및 사택.
영덕군은 ‘2000만 관광객 시대’를 목표로 하고 있다. 영덕군의 관광객 수는 해마다 늘어 2016년 570만 명이던 관광객이 지난해 1천만 명을 돌파했다. 관광객 증가를 위해 영덕군은 올해 관광콘텐츠 개발과 함께 교통망 확충 등 기반시설 조성에 더욱 힘쓸 예정이다.

장기적으로 2000만 관광객 시대를 목표로 하는 영덕군에 지난해 희소식이 들려왔다. 문화재청에서 공모한 ‘근대역사문화공간 재생활성화사업’에 ‘영덕 영해장터거리 역사문화공간’이 최종 선정됐기 때문이다.

영덕군은 지난해 3월 공모사업을 신청해 4월 서면평가, 현장평가 3회, 종합평가, 문화재등록조사 등을 우수한 성적을 거둬 선정됐다. 선정결과, 영해면 성내리 일원 1만7천933.3㎡의 근대역사 문화공간과 국가지정 등록문화재 10개소가 등록됐다.

이로 인해 영덕군은 올해부터 2024년까지 5년간 매년 국비 20~50억원 이상을 지원받아 역사문화공간 내 문화재 보수정비사업, 지중화사업, 역사경관개선사업, 3·18만세운동 활성화사업 등을 추진한다.
영해장터거리역사문화공간계획도
△영해장터거리 근대역사문화공간은 어떤 곳인가.

문화재청으로부터 등록문화재 제762호가 된 영덕영해장터거리 근대역사문화공간은 조선시대 읍성의 흔적이 남아있을 뿐만 아니라 근대기 한국인의 장터거리로서 당시 생활상을 잘 보여주는 곳이다.

특히 1919년 3월 18일 지역 주민 3천여명이 만세운동에 참여했던 곳이라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있다. 1919년 3·18 만세운동뿐만 아니라 이곳은 1871년 최초의 농민운동인 이필제 영해동학혁명과 평민의병장 신돌석 장군의 항일투쟁 등이 벌어진 장소기도 하다. 영덕군은 영해장터거리 중에 3·18만세운동의 시위 경로를 따라 사업구역을 정하고 공모사업을 신청했다.

근대역사문화공간 내 별도로 지정된 10건의 문화재 역시 근대 문화재로 가치가 높다. ‘구 영해금융조합’은 1935년 건립된 영해지역 금융조합 건물로, 당시 농업을 비롯한 이 지역의 산업과 경제 분야 전반에 관련된 근대사의 중심 건물로 당시 유행했던 모더니즘 건축 양식을 오늘날까지 비교적 잘 유지하고 있다는 평을 받고 있다. 얼마 전까지도 농협은행의 지점 영업장으로 활용되는 등 지역사적인 측면에서도 높은 가치를 갖고 있다.

근대의 양조시설의 특성을 볼 수 있는 ‘영해양조장 및 사택’은 막걸리 생산시설과 이를 위한 준비공정 및 관리시설, 관리자의 거주 영역까지 유기적으로 구성됐다. 생산에서 판매에 이르기까지 일련의 과정과 이 지역 양조시설의 특성을 살펴볼 수 있다는 점에서 가치가 크다. 또, 한옥과 근대기 조적조 건물이 혼합돼 있는 등 당시 시대상과 함께 변화상도 볼 수 있는 특징을 갖고 있다.
영덕 영해장터거리 구‘영해금융조합’.
과거 영해의용소방대로 사용된 ‘영해의용소방대’ 건물은 시대의 변화에 따라 다양한 용도로 사용됐다. 또, 당시의 모습이 비교적 잘 남아있는 등 지역의 역사적 흔적을 증명하는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영덕 영해장터거리 구 ‘영해의용소방대’
‘영해장터거리 근대상가주택’은 5곳이 문화재로 지정됐다. 과거 영해장터거리에서 푸줏간으로 사용된 건물부터 영해 지역 부호의 경제적 상황을 엿볼 수 있는 건물, 고무신 가게로 사용돼 목구조의 모습에서 전통적 기법을 잘 보여주는 건물, 영해지역의 공간구조와 장터거리의 변화를 확인할 수 있는 건물, 근대기 상가주택의 형성과 변화 과정을 확인할 수 있는 주택 등이 선정됐다.

지역 언론의 역사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영해언론인협회 지국’ 역시 눈길을 끈다. 1940년대부터 1990년대 초까지 50여 년간 ‘신문지국’과 함께 ‘영해언론인협회 사무실’로 사용된 건물로 2동의 한옥으로 구성됐다.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크고 작은 변형과 증축은 있었지만 전체적인 건물의 구조체나 공간구성은 원형의 모습을 잘 유지하고 있다. 특히 당시 지역 언론의 모습 등을 엿볼 수 있다.

△3·18 만세운동은.

흔히 3·1운동만 아는 경우가 많지만 3·18 만세운동은 한강 이남 최대 규모의 만세 운동이었다. 근대역사문화공간으로 지정된 영해장터거리는 3·18 만세운동의 현장이었다.

3·18 만세운동은 고종의 장례에 참례해 3·1운동을 직접 보고 귀향한 김세영이 구세군 참위 권태원과 기독교 인사들에게 3·1운동을 알리며 추진됐다. 권태원을 비롯해 뜻을 모은 이들은 영해읍 성내동의 장날인 3월 18일에 거사하기로 결의하고, 이 일대의 향반과 유지들에게 참여 약속을 받아 낸다.

3월 18일 당일 영해 주재소 앞에는 3천명의 인파가 몰려 태극기를 높이 들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3천명의 인파는 영해공립보통학교와 영해공립심상 소학교, 영해면사무소, 영해우편소 등을 차례로 파괴하는 성과를 거둔다. 만세 시위는 인접한 병곡면까지 이어져 경찰주재소와 병곡면사무소를 파괴했으며, 다시 영해읍으로 돌아와 밤이 새도록 시내를 누비며 독립만세를 불렀다.

만세 시위는 3월 19일에도 이어졌으나, 헌병대와 일본군 80연대의 기마병이 동원되어 무자비한 탄압이 시작된다. 만세 운동 주동자 임창목·최재곤·이해술 등 8명이 순국하고 16명이 부상당한다. 이틀간의 시위로 180여 명이 검거됐으며, 주동자로 지목된 정규수는 징역 7년, 박의락·서삼진 등은 징역 4년, 남효직·남교문 등은 징역 3년, 김세영·권태원·김원발 등은 징역 2년, 김학이·권영만 등은 징역 1년 6월 형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렀다. 후에 이들은 건국훈장에 추서됐다.

△문화재 보존과 활용을 동시에.

영덕군은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된 영해장터거리 근대역사문화공간을 문화재로 보존함과 동시에 이를 관광자원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2020년에는 사업비 50억원을 투입해 기초학술조사연구와 지속적인 보존기반 구축을 목표로 건축물 기록화 사업을 추진하고, 개별 문화재에 대한 안내판 설치, 문화재 보존·관리 및 활용에 대한 종합정비계획 수립, 부지매입 등을 추진한다.

종합정비계획에는 해당 문화재를 중심으로 인접지역을 포함해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체계적인 문화재의 보존·관리 및 활용을 위한 방향으로 접근한다. 종합정비계획을 바탕으로 국고 보조금 재원 확보에 심혈을 기울일 예정이다.

종합정비계획이 수립되면 세부 사업내용과 구체적 지원규모가 확정되고, 문화재청의 최종승인을 받아 연도별 투자계획에 따른 본격적인 보존·활용기반 조성사업을 단계적·연차적으로 추진한다.

‘작은 것 하나도 영덕의 소중한 역사가 된다’영덕군은 영해장터거리 근대역사문화공간조성사업의 전시·교육·연구 자료로 활용하기 위해 근·현대 영덕의 생활사 전반에 대한 자료를 수집하고 있다.

수집범위는 1876년 개항기부터 1980년까지며, 대상은 근현대기 모습을 담은 사진자료, 농기구, 가전제품, 가재도구 등 생활사 전반 유물자료, 태극기, 고문서, 판결문 등 3·18만세운동 자료, 기념품, 광고전단지, 포스터, 엽서, 잡지 등 그 시대의 문화를 엿볼 수 있는 각종 문화자료와 영덕의 옛 추억을 소환할 수 있는 자료나 물품 등이다. 영덕군 관계자는 “자료 수집이 완료되면 영덕의 추억을 공유하고 문화재 보존 및 활용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고 말했다.

최길동 기자
최길동 기자 kdchoi@kyongbuk.com

영덕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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