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피지 않았다면, 가로 누워 일자로 내려오는 빗
물에 흠씬 젖다가 오목한 눈으로 아래로만 보다가 어
느 밤 검은 날개를 펼치고 어두운 세상을 곤두발질치
다가 깊은 바다에서 낙조처럼 잠영을 하고 있을 거였다.
꽃이 핀 후, 처진 내 입이 동그라지고 오물오물 아기
새들처럼 벌어진다는 게 이슬이 아롱지고 바람이 재잘
대는 소리에 내 눈이 반짝인다는 게 붉은 이사빛*에
매일매일 내 몸이 흔들린다는 게 다 꽃, 꽃이기에 꽃이
기로.

*이사빛: 이른 아침에 뜨는 따사로운 햇빛이라는 순우리말.


<감상> 꽃이 지고 피듯, 인생은 절망에 빠져 있다가 즐거움이 찾아오곤 한다. 늘 즐거움만 있을 것 같은 사람도 꽃이 지면 상처에 젖고, 날개가 꺾어지고, 오래 절망에 빠진다. 절망도 꽃이 피면 즐거움이 가득하여 입이 동그랗게 벌어지고, 바람을 읽어 눈이 밝아지며, 몸이 생기를 되찾는다. 인생만사 새옹지마(塞翁之馬)라고, 기쁜 일이 찾아왔다고 마냥 즐거워하지 말고, 슬픔이 찾아왔다고 너무 절망하지 말자. 낙화와 개화가 나무에서 일어나는 일이고, 희비(喜悲)가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일이므로 그냥 받아들이자. 벌써 매화가 피고 있지만, 꽃 피고 지는 일에 인생을 맞추지 말 일이다. 그냥 꽃이기에 ‘다 꽃’의 일이다. (시인 손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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