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아카데미극장에서 ‘로보트 태권브이’를 보고 자란 대구의 아들 봉준호가 아카데미 오스카를 들어 올렸다. 한국 영화사, 아카데미영화사, 세계 영화사를 한꺼번에 갈아치웠다. 봉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제 92회 아카데미시상식에서 작품상과 각본상, 감독상, 국제영화상 등 4개 부문의 오스카를 들어 올리는 기염을 토했다.

한국 영화 101년사의 경이로운 기록이자, 백인 영화인들의 축제로 ‘백인 오스카’라 불렸던 아카데미 장벽을 훌쩍 뛰어넘어 세계영화사의 새로운 기록이 됐다. 아카데미상 6개 부문에 노미네이트 된 ‘기생충’은 9일(현지시각) 미국 캘리포니아 할리우드 돌비 극장에서 열린 시상식에서 주요 상인 작품상과 감독상 등 4개 부문을 휩쓴 것이다. ‘기생충’은 제72회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의 영예를 안는 등 세계 주요 영화상을 석권했다.

이날 감독상 수상자로 호명된 봉 감독은 무대에 올라 “영화 공부할 때 가슴에 새긴 말이 있는데, 가장 개인적인 것이 창의적이라는 것이라는 말을 책에서 읽었다. 그 말은 마틴 스콜세지가 한 말이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마틴 스콜세지는 ‘아이리시맨’으로 봉 감독과 함께 감독상 경합을 벌인 명 감독이다.

봉 감독은 초등학교 3학년 때까지 대구에서 살았다. 대구에서 살았을 때는 아카데미 극장에서 ‘로보트 태권브이’를 봤다고 했다. 봉 감독은 어린 시절 추억이 있는 영화관 ‘만경관’에 훗날 자신의 영화가 상영된 것에 대한 감회를 밝히기도 했다. 봉 감독은 영화감독을 꿈꾸며 서울 잠실에서 중·고교 시절을 보냈다. 연세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이장호·배창호 감독을 보면서 굳이 영화학과를 나오지 않아도 영화감독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믿고 영화제작에 몰두해 세계적 감독의 반열에 올랐다.

봉 감독의 ‘기생충’은 새로운 기록이 한 둘이 아니다.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아시아계 감독이 수상한 것은 대만 출신 이안 감독이 유일했다. 이안 감독은 ‘브로크백 마운틴’, ‘라이프 오브 파이’로 오스카를 받았다. 하지만 이들 영화는 감독만 아시아계일 뿐 할리우드 자본과 배우들이 출연한 할리우드 영화라는 점에서 진정한 아시아계 감독이 수상한 것은 92년 아카데미 사상 처음이다. 특히 아카데미의 꽃으로 불리는 작품상까지 차지한 것은 실로 경이로운 일이다. 외국어로 된 작품이 아카데미 최고 상인 작품상을 받은 것은 ‘기생충’이 처음이다.

봉 감독은 지난해 10월 미국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영화가 지난 20년 동안 큰 영향을 미쳤음에도 왜 단 한 작품도 오스카 후보에 오르지 못했나?”라는 질문에 “오스카는 로컬(지역 시상식)이기 때문”이라는 자신감과 당당함을 보여줘 화제가 됐다. 이번 봉 감독의 오스카 수상으로 아카데미가 로컬이 아닌 글로벌 영화 축제임을 보여 줬다.

무엇보다 영화 ‘기생충’의 아카데미 수상으로 영화가 전하는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인 ‘빈부격차’ 해소를 바라는 메시지가 세계인들에게 전해지길 바란다. 장하다 대구의 아들 봉준호.
 

관련기사
저작권자 © 경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