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태준 포스텍 인문사회학부 교수
원태준 포스텍 인문사회학부 교수

작년 10월 23일, 영국 남동부의 한 산업단지에서 영국으로의 밀입국을 시도한 동양인 사망자 39명의 시신이 담긴 화물 트럭 컨테이너가 발견되어 영국은 물론 전 세계가 경악하였다. 사건 발생 직후 영국 경찰은 사망자 전원이 중국 국적자들이라고 공식 발표하였으나, 추가 조사 결과 이들이 베트남 국적자들로 판명되어 보름 후에 수정 발표를 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였다. 여기서 흥미로운 사실은 그 어느 누구도 영국 경찰에게 ‘왜 사망자들이 중국 국적자들이라고 지레짐작하여 섣부르게 발표하였냐’고 따져 묻지 않았다는 것이다. 소위 ‘정치적 올바름’에 민감한 영국 언론이 특정 국가에 대한 편견에서 기인하는 경찰의 ‘건너짚음’이라고 난리를 칠만 하였으나 이에 대한 항의는 들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것도 그럴 것이 2000년 6월 도버(Dover) 항구에서 발견된 컨테이너에서 중국인 58명이 질식사한 사례가 있는 등 중국인들의 목숨 건 영국으로의 밀입국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비록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G2’ 국가로서의 위세를 온 세계에 떨치지만, 막상 자국 국민은 공기가 통하지 않는 강철 박스 안에서 개죽음을 당할 것을 감수하면서 서방 세계로의 탈출을 끊임없이 시도할 수밖에 없는 중국의 현실이 영국인들에게는 낯설지 않다. 이런 ‘익숙함’에서 비롯된 영국인들의 대중(對中) 인식이 영국 경찰의 ‘건너짚음’에 어떠한 항의도 제기하지 않는 그들의 모습에서 여실히 드러났다고 할 수 있다. 이들의 이런 침묵을 우리가 과연 탓할 수 있을까.

‘우한 폐렴’으로 널리 불리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진자가 국내에서 속출하면서 중국인 입국 금지 청원이 올라오고, 중국인 관광객이 주로 찾는 호텔, 식당, 병원 등에 ‘중국인 손님은 받지 않는다’는 문구가 나붙고, 일부 택시기사들은 중국인 승차를 거부하고 있다고 한다. 이를 ‘제노포비아(xenophobia),’ 즉 ‘무조건적 외국인 혐오’ 현상으로 규정한 일부 정치인들과 사회평론가들은 성숙하지 못한 시민의식을 질타하며 국격을 생각해서 행동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물론 ‘혐오’는 대상을 막론하고 그 어떤 경우에서도 정당화될 수 없다. 하지만 한국인들에게만 성숙한 시민의식을 일방적으로 요구하는 이런 핀잔은, 잉글랜드의 해안가에 목숨을 걸고 당도하는 중국인들을 바라보는 영국인들의 ‘대중 피로도’만큼이나 누적되어 온 한국인들의 ‘대중 피로도’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거나 인식하고 싶지 않은 데에서 기인한다고밖에 볼 수 없다. 현재 한국 사회에서 폭발하고 있는 대중 반감은 우한 폐렴 하나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사드 문제를 빌미로 중국 방문객을 단숨에 끊어 한국의 경제를 휘청거리게 하고 국내 대기업을 중국에서 바로 퇴출시키는 중국의 위력에 한국인들은 경악하였다. 베이징을 방문한 대통령 특사를 측면 하석에 앉힘으로써 노골적으로 하대하다 못해 직접 방문한 대통령을 ‘혼밥’까지 시키는 중국의 도도함에 한국인들은 좌절하였다. 2015년 메르스 사태가 터졌을 때 한국인들을 ‘까오리빵즈(高?棒子)’라고 비하한 중국의 모욕에 한국인들은 분노하였다. 중국 본토에서 불어오는 감염증과 미세먼지로 인해 이제 한국은 실내에서도 마스크를 써야 하는 ‘복면 강도들의 천하’가 되었다. 축적된 반감의 근본 원인은 무시한 채 언제까지 한국인들에게만 중국에 대한 인내와 이해심을 요구할 것인가?

할리우드 좀비 영화의 한 장면처럼 전 세계 국가들이 전세기를 띄워 자국민을 우한에서 탈출시키는 광경을 목격한 중국 당국도 느낀 바가 많을 것으로 생각된다. 중국이 진정한 글로벌 리더로서의 자격을 갖추고자 한다면 글로벌 기준에 걸맞은 정치의식과 시민의식을 하루빨리 길러야 할 것이다. 우리 정부도 눈치 보고 빌빌대는 대중 외교가 아닌, 당당하고 할 말하는 대중 외교를 통해 중국이 이러한 자격을 갖출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할 것이다.

저작권자 © 경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