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혁 학강미술관장
김진혁 학강미술관장

소식이 왔다. 한국현대조각가 오종욱 작가를 알고 있냐고? 이어 포항시립미술관에서 2월 13일부터 오종욱 기증특별전이 열린다고 한다. 그 소식도 멀리 서울의 어떤 미술학도로 부터였다. 내가 있는 이곳 대구에서는 그의 특별전이 포항에서 곧 열린다는 사실도 거의 모르고 있었다. 대구에서 포항은 가까운 거리로 가끔씩 동해바다가 생각나면 죽도시장, 영일대해수욕장, 포항시립미술관, 구룡포 일본식가옥지역에 나들이한다. 60년대에는 대구에서 완행열차를 타고 영일대해수욕장에서 물놀이를 한 기억이 스친다. 포항사람들의 정다움에 억센 사투리와 함께….

포항제철소가 생기면서 포항이라는 항구도시는 철의 도시로 생산과 소비가 증가 되었다. ‘서울에서 첫 출시된 유행품은 다음 날 포항의 오거리 육거리에 가면 보인다.’는 신조어가 생겼다고 한다. 이러한 적극성이 독일 작가들의 제로 ZERO전에 이어, 이번 오종욱 특별전에서도 보인다.

내가 아는 오종욱은 황해도 신천 태생으로 1959년 서울대학교 조소과를 졸업했다. 그 해 제8회 국전에 ‘패배자’라는 작품으로 문교부 장관상을 수상했다. 이 작품은 6·25 이후 사회의 비극적 현실의 이미지를 나타낸 석고 인물상이었다. 이어서 ‘패배자의 딸’, ‘미망인’, ‘위증인’, ‘이단자’, ‘허수아비’ 등 현실비판과 실존의식의 작업을 펼쳤다. 오종욱은 17세에 한국전쟁에 참전하였다. 자신의 눈앞에서 친한 친구인 전우가 죽자 그러한 죽음의 트라우마가 그의 작업으로 이어졌다. 1971년 상파울로 비엔날레에 출품하고 1973년부터 80년까지 국전심사위원으로 활동했다. 원형회 멤버로 참여하였고 68년부터 현대공간회 창립회원이 되었다. 1976년 서울 신세계화랑에서 첫 개인전을 열었다. 이후 경북대학교에 조소전공이 생기자 인천교육대학에서 경북대학교로 옮겼다. 후진을 양성하기 위해 대구로 정착한 것이다. 경북대에서는 오종욱을 존경하고 따르는 제자가 많았다고 한다. 한 제자의 회고에 따르면 술좌석에서 항상 “자네들 같은 전공 제자가 좋아. 왜냐하면 든든한 조각 예술가를 많이 키울 수 있어”라고 좋아했다고 한다. 1989년 대구이목화랑과 1991년 대구에서 청담동으로 옮겨온 이목화랑에서 초대 개인전을 가졌다. 1990년 봄 DAC 대구문화예술회관이 신축되었다. 정문입구 중앙에 양 손을 펼친 오종욱의 대형 조형물이 세워졌다. 아마 대구·경북을 대표하는 한국의 중요한 철 조각가로서의 위상으로 그의 작업을 만나 볼 수 있었다.

대구 범어동 주택가에 자리한 오종욱의 자택과 반지하공간의 작업실에는 항상 제자들이 찾아와서 정을 나누었다. 동해의 구룡포 바닷가로 제자들과 함께 여행을 가기도 하며 입체라는 조형론을 함께 토론하기도 하였다. 1996년 정년퇴임을 몇 년 앞두고 한창 활발히 활동할 시기에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오종욱 - 분신(570x85x207.5cm) 청동, 1991
오종욱 - 분신(570x85x207.5cm) 청동, 1991

평생에 보여준 ‘분신’ 시리즈는 그를 이해하는 키워드가 되었다. 어느덧 세월이 흘러 우리의 기억에 그의 철조각과 브론즈 작업이 흐릿하게 되었다. 포항이라는 철의 도시와 그가 사랑한 동해가 바라보이는 포항시립미술관에서 오종욱 철조각 특별전이 열린다고 하니 기쁜 마음으로 달려가고 싶다. 이번 전시회는 ‘미망인’, ‘배신자’를 포함한 철조각 40여 점과 평면 2점, 드로잉과 사진 등으로 구성된다고 한다. 안타까운 것은 2월 19일로 예정된 오픈식이 신종코로나 바이러스로 연기되었다는 사실이다. 한국의 대다수 미술관 오픈이 연기된 것과 비슷하다. 그가 살아생전 필자와 특별히 깊은 인연은 없지만 바다가 보이는 아름다운 POMA에서 오종욱 특별전을 기획한 관계자에게 지면을 통해 감사를 드린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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