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만으로 살 수 있는 것들을 불러본다
물고기 베고니아 버드나무 여름 들판의 옥수수들
그리고 삼 년 전 태안 바닷가에서 주워온 몽돌 한 개
그것은 물만 주면 반들반들한 정수리를 내게 보여주곤 했지
옛날 옛적 담뱃내 쩐 누런 방에서 죽은 외할머니도
사흘간 물만으로 사시다가 호르륵 날아가 버리셨지
혹서기의 뱁새처럼

나도 가끔은 물만으로 살고 싶은 저녁이 있네
물가에 앉아 물가가 주는 노래
물가가 주는 반짝거림만으로 환희에 찰 때
그건 물로만 살게 될 나의 마지막을 미리 체험하는 순간,

물만으로 살 수 있는 것들 / 최후를 사는 것들
느린 보행의 늙은 사마귀 / 늦여름 오후의 백일홍
저녁이 오기 전 저수지 위에서 마지막으로 반짝이는 것들

눈앞의 숲을 자신이 가진 가장 부드러운 움직임들로 마음껏 장식하고는
맑은 물 한 컵을 마주한 요정의 저녁처럼
한가로운 생의 조율이 끝나면 / 물이 밀려가듯 한 세계가 닫힌다


<감상> 깨끗한 물만으로 사는 생물들은 얼마나 순수한가. 인간도 태아(胎兒)일 적에, 죽음을 맞이할 적에는 순수함을 꿈꾸고 이를 증명하듯 물과 가깝다. 살아가면서 물의 순수성을 흐리게 만드는 환경적, 심리적인 오염이 극심하다. 후쿠시마 방사능 오염보다 더 극심한 것은 인간의 마음이 오염된 것이다. 저녁이 오기 전 물가가 주는 반짝거림과 고요를 닮아갈 수 없나. 내 최후의 모습이 물과 같이 잔잔하게 반짝거릴 수 없나. 더럽혀진 물로 내 몸을 절망으로 몰고 가지 전에 남은 생을 잘 조율할 수 없나. 물이 바람에 밀려 현(絃)을 타듯. (시인 손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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