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병진 경주지역위원회 위원
서병진 경주지역위원회 위원

흔히 6070세대의 모임에서 백수(白手)라는 말을 많이 듣는다. 나도 몇 번 쓴 적이 있다.

말해놓고 보니 내가 정말 백수인가? 백수라는 말이 좋은 말인가? 딱히 정해놓고 하는 일 없이 지낸다는 말을 구차하게 설명하기 싫어 얼버무린 말이었다.

백수. 어학사전에는 ‘한 푼도 없는 처지에 일은 하지 않고 빈둥빈둥 놀거나 게으름을 피우는 사람을 이르는 말’이라 풀이하고 있다.

그런데 나는 한 푼도 없는 사람이 아니다. 40년간 공직생활을 한 뒤 퇴직하여 연금으로 생활하고 있다. 꼬박꼬박 기여금을 부어 당당하게 받는 연금이 부끄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런데 왜 미안해지려고 하는가.

봉사활동 한답시고 이곳저곳 기웃거리기도 한다. 더 배워보겠다고 평생교육기관에도 들락거린다. 다만 돈을 버는 일에 참여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참여할 곳도 마땅찮지만 참여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럼 나는 백수인가.

백수라는 말에는 건달이 붙어 다닌다. 백수건달(白手乾達). 건달이란 말은 불교의 건달바(乾達婆)라는 말에서 유래되었다. 수미산 금강굴에 살며, 향(香)만 먹고 허공을 날아다니며 노래를 하는 하늘나라 신이라고 한다.

또 하늘을 날아다니며 살아생전에 지은 업에 따라 다시 환생하기 전까지의 불안정한 존재라고도 한다.

건달이란 한마디로 존재의 뿌리가 불확실한,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불안정한 존재를 가리키는 말인 것 같다.

그래서 좀 낭만적인 말일 성싶어서 한량(閑良)이란 말을 찾아보았다.

‘용비어천가’에는 ‘관직이 없이 한가롭게 사는 사람을 한량이라 속칭한다’고 하였다. 본래 관직을 가졌다가 그만두고 향촌에서 특별한 직업이 없이 사는 사람을 지칭하는 것도 같다.

한편 돈 잘 쓰고 만판 놀기만 하는 사람을 가리키기도 하였는데, 이것은 한량이 직업이 없으면서도 경제적으로는 비교적 부유한 계층이었음을 말해 준다. 과거(科擧)에는 자신이 없고, 부모덕에 기생이나 데리고 산천경개 구경 다니며 풍류를 즐기는 사람들일 것 같다.

요즘 시절이 하 수상하여 백수가 판을 치는 세상이다. 마을에 한둘뿐이던 백수가 너무 많아 보인다. 이십대 태반이 백수라고 ‘이태백’, 청년 백수 전성시대라고 ‘청백전’, 10대도 곧 백수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 하여 ‘십장생’이란 말이 유행하고 있다. 젊은이의 다수가 백수라고 하니 걱정이 아닐 수 없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옛날 백수는 게으름의 결과였으나 지금은 일자리 자체가 부족하단다. 젊은이들이 포시러워서 힘든 일은 하려들지 않고, 쉬운 일이나 보수가 좋은 일자리만 찾기 때문이라고 분석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일은 하고 싶은데 일자리가 없다는 사람이 더 많다. 일방적으로 청년 실업자를 게으르다고 비난만 할 수 있겠는가. 백수와 실업자는 구별되어야 한다. 실업자는 곧 백수, 백수는 곧 실업자라는 발상은 버려야 할 것 같다. 주변에 일하고 싶은데 일을 할 수 없는 사람, 보수를 제대로 주지 않아도 좋으니 일자리를 달라고 하는 젊은이가 많이 보인다.

백수건달. 직접 관계도 없이 싱겁게 덜렁덜렁 돌아다니는 사람, 아무 일에나 따라다니는 사람, 돈도 없이 난봉을 부리는 사람이 백수건달이지 어찌 일하고 싶은데도 일자리가 없어 헤매는 젊은이를 백수라고 할 수 있겠는가. 안타까울 뿐이다.

크게 돈 걱정하지 않고 건강교실, 교양교실에 드나들고, 봉사활동이나 여행 등으로 노년생활을 하면서 자신을 백수라고 아무렇지 않게 말해버린 자신이 미안해진다.

나는 백수건달이 아니다. 한량도 아니다. 다른 적당한 말을 찾을 때까지 베풂을 위한 ‘하얀 백수’가 되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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