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태준 포스텍 인문사회학부 교수
원태준 포스텍 인문사회학부 교수

제1차 산업혁명기의 영국에서는 인류 역사상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엄청난 자원의 이동과 부(富)의 창출, 그리고 이에 따른 폭발적인 인구 증가와 인구 분포의 대대적 변화가 발생했다. 이 같은 변혁이 영국 사회에 불러일으킬 수 있는 혼란과 무질서로 인해 재산권이 침해되어 영국의 경제적 번영이 위협받을 것을 우려한 영국 정부는 18세기 중반부터 19세 중반까지 소위 ‘피의 법(Bloody Code)’라고 불린 사법 시스템을 도입, 밀렵과 소매치기 등 비교적 경미한 범죄를 포함한 222개의 범행에 대해 공개 처형을 언도할 수 있도록 법을 제정해 나갔다. 아무리 사소할지라도 법을 어기면 극형에 처해질 것이라는 공포심을 영국인들의 마음에 심어줌으로써 범죄자들의 출현을 최대한 방지하고 국민들의 재산권을 보호하겠다는 것이 영국 정부의 의도였다. 그러나 수많은 동료 시민들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는 것을 원하지 않았던 판사들과 배심원들은 많은 피의자들에게 무죄 선고를 내리거나 사형을 면제받을 수 있는 수준의 경범죄로 유죄 선고를 내린 관계로 ‘피의 법’ 체제 하에서 처형당한 사람들의 수가 그 전에 비해 오히려 줄어들었다. 결국 영국 정부의 절실함과 다급함이 담겼던 ‘피의 법’은 산업혁명기의 범죄율 상승을 막아내지 못했다.

최근에 부산에서 지하철을 타고 있던 한 청년이 자기가 우한에서 왔고 폐렴이 있으니 모두 자기에게서 떨어지라고 소리친 후 이에 놀란 탑승자들이 자리를 피하는 모습을 ‘몰카’로 찍어 유튜브에 올리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경찰에 입건된 청년에게 이런 비상식적인 행동을 한 이유를 묻자 ‘유명해지고 싶어서 그랬다’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사실 유튜브에서 인기를 얻기 위하여 별 해괴망측한 행동을 동영상으로 찍어 탑재하는 사례는 우리에게 낯설지 않다. 그러나 이 청년의 경우가 더욱 우려가 되는 이유는 경찰 조사에서 반성하기는커녕, ‘견찰(개와 경찰의 합성어)’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며 경찰을 조롱하는 언사를 담은 후속 동영상을 버젓이 올렸기 때문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 개념 없는 행태에 분노한다고 하지만, 과연 대한민국 공권력을 이렇게 우습고 하찮게 여기는 국민이 비단 이 청년 한 사람뿐일까. 코로나 시국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광화문 집회가 강행되는 작금의 현실은 대한민국 공권력을 만만하게 보는 많은 국민의 시각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현 정부가 집권하자마자 적폐 청산, 사회 정의 바로 세우기를 외치며 ‘개혁’을 명분삼아 사법농단 심판, 검경 수사권 조정, 공수처 설치 등을 밀어붙임으로써 공권력이 위축되고 그 권위가 깎이면서 한국의 사법부, 검찰과 경찰이 국민의 분노가 집중될 수 있는 ‘동네북’ 신세로 전락하고 있다. 이로 인해 국민의 비난에 극도로 예민하게 된 경찰이 폭력 현장에서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것을 꺼리고 상황을 지켜보기만 하는 경우가 늘고 있고, 정권의 눈치를 보는 검찰 수뇌부 몇몇으로부터 명백히 잘못을 저지른 사람을 기소하지 말자는 의견이 거리낌 없이 나오고 있다. 물론 대한민국 공권력이 그동안 심각한 수준의 인권 유린을 자행했음은 절대로 부정할 수 없고, 그들은 이에 대해 통렬히 반성해야 마땅하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마주한 4차 산업혁명은 1차 산업혁명기의 영국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많은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이는 우리가 예측할 수 없는 범죄 수법의 출현, 사회 구성권 간의 갈등 심화, 현존 질서의 심각한 교란으로 이어질 수 있다. 영국 정부가 그렇게 적극적으로 추진했음에도 불구하고 ‘피의 법’이 큰 효과를 보지 못했는데, 지금 우리 정부의 기조 하에 공권력에 대한 국민의 불복 의지가 커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국민의 권리가 심각하게 침해되어도 이를 제대로 구제해주기 어려울 정도로 그 권위와 자부심이 실추된 공권력으로 어떻게 4차 산업혁명 사회의 안정과 번영을 도모하기를 기대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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