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곳은 지대가 제법 높아
바람 거세고 비가 잦은 편이다
밤이면 인기척이 없어도
현관의 센서 등이 갑자기 켜질 때가 있는데
센서를 가동하여 등을 켜는 놈들은
대개가 무당벌레들이다
거기가 사랑을 나누는 최적의 장소인 듯,
불이 들어올 때의 이 녀석들은
암수 한 쌍이 바짝 들붙어 있다
그리움이랄지 잊혀진 기억들 문득 되살아나
가슴을 쓸어내리게 되는 때도
저렇듯 작은 기미들이
영혼과 신체의 재봉선,
그 어스름 내린 불수의근에 가만가만
황홀한 센서 등을 켜는 것은 아니겠는지!


<감상> 무당벌레들이 사랑을 나누는 장소가 마침 센서 등이 켜지는 곳이다. 마치 우리의 사랑을 공표하듯이 어둔 밤에 환한 불을 켠다. 미물들도 자신들의 사랑을 부끄럼 없이 드러내는 풍경에서, 저렇듯 작은 사랑의 기미(낌새)들이 내 몸에도 불을 켠다. 지난날의 잊혀진 기억들뿐이겠는가. 현재에도 그리움이 가득한 플라토닉 사랑을 하면서 육체적인 사랑을 꿈꾸는 것이다. 누구든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움직이는 근육인 불수의근(不隨意筋)에 황홀한 센서 등을 켜는 건 당연지사가 아닌가. (시인 손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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