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선규 대구교대 교수
양선규 대구교대 교수

어려서 읽은 시구(詩句) 중에서 “생활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만큼 감명 깊었던 것도 없습니다. 동네 이발소에서 처음 그 시를 만났을 때 “아, 저런 게 시구나!”라고 탄복했습니다. 큰 위안을 얻었습니다. 이어지는 “마음은 미래에 사는 것/ 현재는 슬픈 것”이라는 구절과 “그리고 지나가는 것들은 훗날 소중하게 되리니”라는 구절도 참 좋았습니다. 훗날 이 모든 어려움들이 ‘소중한 추억’으로 간직될 날이 반드시 올 것이라는 믿음과 소망을 가질 수 있게 하는 ‘천상의 말씀’으로 들렸습니다. 가산(家産)이 풍비박산 나고 가족들마저 뿔뿔이 흩어져 살던 아주 어려운 때 만난 위로와 격려의 말씀이라 그 절실함이 더했던 것 같습니다. 과연 푸시킨이 말했던 것처럼 그때 ‘지나간 것들’은 지금 모두 ‘소중하게’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그때처럼 무지막지하게 생활이 저를 속이는 일도 아예 없고요.

그 후 제 불문(不文·마음으로만 새기는)의 좌우명이 ‘생활을 속이지 말자’가 된 것도 아마 그 시의 영향 때문이었을 겁니다. 물론 꼭 그 시 때문만은 아니겠지요. 그러나 제 마음속 다짐을 그렇게 문장으로 만들어 준 것은 그 시가 분명합니다. “생활이 나를 속인 적은 많지만, 나는 결코 생활을 속이지 않겠다.”라고 틈날 때마다 다짐하며 살아왔습니다. 내 배 곯지 않고 식구들 따뜻하게 입히고 잠자리 구걸하지 않으며 떳떳하게 사는 일만큼 중한 것도 없다는 ‘생활의 발견’이 어릴 때부터 확실하게 제 안에 자리 잡았던 것입니다.

며칠째 두문불출하며 전국민적인 코로나바이러스와의 전쟁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바이러스 적군이 더 이상 아군을 해치는 일이 없도록 모두가 일심단결해서 진지전(陣地戰)을 펼치고 있는 형국입니다. 일인 생활자는 일인 생활자대로, 가족 생활자는 가족 생활자대로 각자 진지를 구축하고 적의 보급선을 끊는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고립을 자초하며 적의 보급로에 타격을 주는 고육지책의 싸움을 벌이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식의 진지전은 난생처음이라 때로는 불안한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최전방에서 분투하고 있는 의료진과 공공부문 종사자들을 믿고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심정으로 의연히 대처하고 있습니다.

가족 단위로 바이러스와의 진지전을 펼치면서 드는 소감이 하나 있습니다. 이 상황이 서부영화나 무협영화에서 흔히 보는 선과 악의 대결과 유사하다는 것입니다. 그런 장르극의 ‘일반적인 싸움의 도식’을 설명하고 있는 영화평의 한 대목이 있어 참고로 인용합니다.

“영화는 보통 악한들에 의해 조장된 어떤 상황 S로 시작된다. 외부에서 온 악당에 의해 마을 전체가 공포와 위협에 빠지고 주인공의 부모나 형제가 죽는 상황이 펼쳐지거나, 이른바 사술(邪術)을 쓰는 사파(邪派)계열의 악한들에 의해 정파(正派)의 도장이 깨지고 사부가 죽는 것으로 만들어진 어떤 상황(S)이 영화의 출발점이다. 악한들의 악행이 거듭되어 상황은 계속 악화되고, 그에 대한 공분(公憤)은 확장되지만 애석하게도 우리의 주인공은 그것을 극복할 힘을 아직 갖지 못했다. 산에 들어가 어떤 고수(高手)를 만나 무적의 강력한 비기(秘技)를 익히거나, 혹은 악당과 대적할 조력자를 찾던가 하는 식의 사태가 끼어들고, 이전 상황에 없던 행동(A)이 관여한다. 그리고 그 행동의 결과 사파의 세력을 박살 내거나 그들의 굴복을 받아냄으로써 상황은 전혀 다른 것으로 바뀌고(S‘), 세상은 다시 평정을 찾게 된다.”(이진경, 「<동사서독>과 인연」 중에서)

‘코로나19’라는 외부에서 침입한 악당을 퇴치하려면 공분의 확장(전국민적인 단결)과 조력자(의료진의 헌신), 그리고 강력한 비기(백신이나 치료제)가 필요하다는 것으로도 읽힙니다. 저는 여기에다 하나 더 첨가하고 싶습니다. 가족의 힘입니다. 환란을 넘어서는 가장 큰 힘은 결국 가족에게서 나옵니다. 가족은 언제나 사랑이고 해결이고 구원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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