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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의 숲] 포항 기계 설내숲
[경북의 숲] 포항 기계 설내숲
  • 이재원 경북생명의숲 고문
  • 승인 2020년 03월 04일 21시 52분
  • 지면게재일 2020년 03월 05일 목요일
  • 15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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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냇물 흐르는 개울둑 따라 아름드리나무 무성
기계 설내숲

포항의 ‘기계’라는 지명은 신라 경덕왕 때부터 불러져왔으니 1,200년 이상 사용된 지명이다. 조선조에는 기남·기북·기동 3개 면으로 나누어지기도 했다.

오랫동안 경주부 관할이었다가 1906년 흥해군으로 편입이 됐다. 그러다가 1914년 영일군으로 통합되면서 영일군 기계면이 되었고, 1967년에 기계면 기북출장소를 설치했다가 1986년에 기북면으로 승격시키면서 분리가 됐다. 현재는 포항시 북구 기계면이다.

기계의 진산(鎭山)은 운주산(807.3m)이다. 산이 높아 늘 구름이 머물러 있다는 뜻에서 이름 붙인 운주산과 봉황이 내려앉은 모양이라는 뜻의 봉좌산(589m)이 기계를 둘러싸고 있어 포항에서 대구 방향으로 고속도로를 타고 가면 서포항IC를 지나 고속도로 양옆으로 운주산과 봉좌산을 바라보며 영천으로 접어들게 된다.

봉좌산과 운주산이 영천으로 넘어가는 길목이 되는 셈인데 봉좌산에서 흘러내리는 계곡에 봉계(鳳溪) 마을이 있다.

임진왜란 때 경주김씨 기계 입향조인 김언헌이 칡숲을 쳐내고 마을을 일구었기에 벌치동(伐致洞)이라 하던 것을 간단히 치동이라 부르기도 한다.

치동 어귀에는 개울이 흐르는데, 고려 공민왕 때 홍수로 황폐해진 전답을 호미로 복구했다 해 호미 설자를 따서 설내라 부른다.

분옥정

산에서 내려오는 계곡에는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450호로 지정된 분옥정이라는 정자가 있다. 조선 숙종 대 돈옹공 김계영(1660~1729)의 덕업을 찬양하기 위해 순조 20년(1820)에 경주김씨 문중에서 건립했다. 김계영은 성균관에서 대과를 준비하다가 망국적인 당쟁과 권력에 대한 욕구로 얼룩진 당시의 사회상에 염증을 느끼고 결연한 심정으로 벼슬길을 체념한 뒤 돌아와 후학양성에 전념한 인물로, 분옥정에서 조금 상류로 올라간 바윗돌에 씻을 세(洗), 귀 이(耳), 여울 탄(灘)의 ‘세이탄(洗耳灘)’이라는 글귀를 새겨두었다. ‘이 여울에서 자신의 귀를 씻었다’란 뜻으로 난세와 결별하겠다는 의지를 나타낸 말이다. 포항에 이런 정자가 있었던가 할 만큼 주변의 풍광과 잘 어울리는 분옥정은 용계정사라고도 불리며, 출입을 건물 뒤편으로 하고 앞면은 계곡물을 향하도록 배치하고 있는 丁자형의 목조 기와집이다. 정원에는 수령 300년의 키 낮은 향나무와 400년의 높이 자란 소나무가 마주하고 있어 고풍스런 흙담과 더욱 잘 어울린다.

분옥정에서 마을로 조금 내려오면 마을 가운데 못을 만난다. 300여 년 전 한 나그네가 지나가면서 여기 치동 마을 사람들에게 마을형상이 불이 자주 나는 지형이라고 알려주었다. 경주김씨 집성촌인 이 마을 사람들은 마을 가운데 저수지를 만들고, 큰 마을에 있는 저수지란 뜻으로 대촌지(大村池)라 불렀다. 이후 말미들에 농업용수를 공급하면서부터는 말미평지[馬未平池]라고 했다 한다. 이곳에서 단연 눈에 띄는 것은 300년 된 두 그루의 왕버들이다.

버드나무는 물을 좋아한다. 뿌리가 물을 정화시키는 작용을 한다 해서 우물가에 버드나무 등을 심기도 했다. 버드나무는 종류가 많다. 가지가 축축 처지는 수양버들, 능수버들 그리고 버들강아지라고도 부르고 버들피리 만드는 갯버들 말고도 그냥 버드나무라고 부르는 나무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버드나무와는 달리 위풍당당한 버드나무가 바로 왕버들이다. 이름부터 ‘왕’이 들어있지 않은가. 수명이 짧은 다른 버드나무류에 비해 왕버들은 오래 살아 정자나무로도 많이 남아 있는데, 봉계의 왕버들은 물가에서 건강하게 자란 품이 보는 이까지 힘이 쏟게 만든다. 2013년에는 이 일대에 수변공원이 조성되어 물가에 정자도 만들어져 있다.

이제 마을을 좀 더 내려올수록 점차 넓어지는 설내를 만난다. 설내는 기계천으로 만나는 개울이다. 개울둑을 따라 약 1.5㎞에 걸쳐 아름드리나무들이 숲을 이뤘는데 바로 설내숲이다. 하지만 예전의 무성했을 숲을 다시 못 보는 건 안타깝다. 느티나무, 팽나무, 느릅나무, 말채나무, 지금도 남아 있는 나무들이 예사롭지 않은데 하천정비를 하면서 더 많은 나무들이 사라지고 말았다. 일부는 포항도심의 철길숲이 조성되면서 옮겨 심어졌다고 하니, 도심에서 설내숲의 오래된 나무를 볼 수 있는걸 오히려 다행이라 여겨야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설내숲은 설내숲대로, 옮겨진 노거수는 노거수대로 원래의 모습을 볼 수 없는 점은 분명하다. 더군다나 하천정비 외에도 여러 현대적 건물과 주차장을 갖춘 시설물들이 조성되면서 훼손되었을 숲을 생각하면 납득이 되지 않는다. 몇 년 전부터 공사 중이던 건물이 이번엔 그 이름이 붙었다. ‘농경철기문화 테마공원’. 소개 글에는 ‘거대한 에코뮤지엄(ECO-MUSEUM)’이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봉황이 내려앉아 이름 지어진 봉좌산과 그 계곡에 문화재 정자와 훌륭한 숲이 있는 봉계리와 농경철기가 어떤 연관이 있는지는 좀 더 알아봐야 할 일이다. 하지만 테마공원에 물놀이 체험장은 더욱 이해가 안 된다. 이곳에 과연 물놀이를 이용할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게다가 만들어진 시설물들은 사용하지도 않은 채 늘 방치되진 않을까. 걱정이 앞선다. 숲의 보존과 이용은 늘 이렇게 좋은 결론을 내지 못하는 것 같아 아쉬울 따름이다. 이러한 아쉬움은 미안할 정도인데, 바로 힘들게 살아가고 있는 시무나무가 대표적이다.

시무나무는 이름부터 생소한 분들도 많으리라 본다. 우리나라와 중국에만 분포하는 세계적으로 희귀한 나무로 학술적인 가치 또한 크다고 한다. 예전에는 시무나무가 오리나무처럼 거리를 나타내는 이정표로 심었다고 한다. 5리마다 오리나무를 심은 것처럼 10리나 20리 마다는 시무나무를 심는 식이다. 모양은 느릅나무와 비슷하고 작은 가지가 변한 가시가 있다. 당산나무처럼 크게 자라기도 한다는데 설내숲의 시무나무는 힘겨워 보인다. 줄기에는 켜켜이 쌓인 이끼가 세월을 느끼게 하는데 수령이 무려 300년이나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나무의 가운데 목질부는 텅 빈 채로 하천의 콘크리트 옹벽과 새로 난 콘크리트 다리 사이에 끼어있는 듯한 모습이다. 주변의 높아진 지반으로 인해 뿌리에 부족한 공기를 공급하기 위해 마른 우물이라 해서 주변을 우물처럼 공간을 만들어 겨우 유지되고 있는 모습이 측은하다.

기계 지역을 기동·기서·기남·기북으로 나누어졌을 때는 설내 주변은 기남의 영역이다. 도로 이름도 ‘기남로’이고 기남경로당이 남아 있고 예전에는 기계초등학교 기남분교장이 이곳 봉계에 있었다. 1957년 기계초등학교 봉계분교장으로 설립돼 이후 기남국민학교로, 다시 기계초등학교 기남분교장으로 이름을 바꾸다가 1994년 기계초등학교 본교로 통폐합됐다. 참고로 기계초등학교는 몇 년 후면 100회 졸업식을 가질 만큼 오랜 학교이다.

기남분교가 있던 자리에 지금은 봉좌마을교류센터가 만들어져 있으며 오토캠핑장, 글램핑장 등으로 활용되고 있다.

봉계와 설내 등 일대는 봉계1리에 해당하는데, 인근 봉계2리에는 관평(灌坪), 이동(伊洞)과 같은 자연부락이 있다. 관평(灌坪)은 물 댈 관(灌)자를 쓴 걸로 보아 ‘물 대기 좋은 들’이라는 뜻으로 지어진 마을 이름이고, 이동(伊洞)은 윤(尹)씨 들만 사는 마을이어서 윤동(尹洞)이라 했다가, 차츰 다른 성씨가 이주해 와서 사람 인(人)자를 붙여 이동(伊洞)이라 지어졌다 한다. 관평에는 파평윤씨 시조인 태사공 윤신달의 묘와 묘지를 관리하기 위해 후손이 조선 영조 28년(1752)에 처음 건립하여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201호로 지정된 봉강재가 있어 둘러볼 만하다. 글.사진=이재원 경북생명의 숲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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