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안서 1㎞ 떨어진 '목책 성곽'…둘레 약 400m·내부면적 1만㎡
동해안 첫 토석혼축 방식 '눈길'

영덕양성리성곽남쪽
경북 영덕에서 동해안에 출몰하는 왜구를 감시하고 방어하기 위해 고려시대에 조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성곽시설이 확인됐다.

매장문화재 조사기관인 성림문화재연구원(원장 박광열)은 고속도로 제65호선 포항·영덕간 건설 공사 지역에 있는 양성리 유적을 발굴해 흙과 돌을 섞어 쌓은 고려 목책 성곽과 건물터, 배수시설을 찾아냈다고 5일 밝혔다.

영덕 남정면 양성리 성곽은 바닷가에서 서쪽으로 1㎞ 떨어진 56m 높이 야산 정상부에 축조했다.

건물터와성벽남쪽
성곽 둘레는 약 400m이며, 내부 면적은 1만㎡가량으로 짐작된다. 직경은 동서 110m, 남북 100m이다. 정상부 아래쪽을 따라 원형으로 돌아가며 땅을 파고 성벽을 올린 테뫼식 성곽인데, 일부 구간은 계곡을 감싸도록 성벽을 쌓은 포곡식(包谷式) 산성이 혼합됐다.
유적지전경
김희철 성림문화재연구원 조사부장은 “일반적 성곽과 비교하면 규모가 작아 중요한 거점을 보호하려고 축조한 작은 시설물인 보루일 가능성이 크다”며 “양성리 유적은 한국전쟁 당시 인천상륙작전과 연계해 또 다른 상륙작전이 펼쳐진 장사해수욕장이 한눈에 보이는 곳에 있다”고 설명했다.

김 부장은 “유물은 고려시대 기와와 자기가 주로 출토됐다”며 “조선시대 유물이 나오지 않는 점으로 미뤄 고려시대에 사용하다 폐기된 듯하다”고 덧붙였다.

양성리 성곽은 옛 문헌에서 그 존재가 확인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고려사’를 보면 고려 후기에 왜구가 동해안에 있는 강릉부, 영덕현, 덕원현, 삼척현을 침략했다는 기록이 있어 왜구 방어용일 확률이 높다고 조사단은 전했다.

유적지분포도
조사단은 양성리 성곽이 동해안 지역에서는 처음으로 나타난 고려 토석혼축 방어시설이라는 점에 주목했다. 토석혼축은 흙과 돌을 사용해 쌓았다는 의미다.

현재까지 드러난 성벽 높이는 2.6m, 너비는 7m다. 안쪽은 땅을 별도로 굴착하지 않고 자연 지형에 산돌과 냇돌을 3∼5단 정도 쌓았다. 지대가 낮은 곳 외벽은 지형을 수직으로 파내고 산돌과 냇돌, 점토와 모래가 섞인 흙을 20차례 이상 엇갈리도록 층층이 다져 올렸다.

성곽 남쪽과 남동쪽 외부에는 가장자리를 따라 4.2∼4.7m 간격으로 편평한 냇돌을 두었다는 점도 파악됐다. 냇돌은 나무 울타리인 목책 기둥을 놓기 위한 시설로 판단됐다.

김 부장은 “목책 시설 주변에 불에 그을린 자국이 있다”며 “화재로 목책이 소실된 듯한데, 싸움의 흔적일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유적지출토유물
성곽 내부에서 나타난 건물터 유적은 모두 12기다. 정상부에 사각형 망루 시설을 설치하고, 동쪽에 온돌을 갖춘 건물터 4기를 마련했다.

나머지 건물터 7기는 남쪽 성벽 안쪽에 나란히 배치했는데, 일부는 불에 탄 뒤 다시 조성한 것으로 확인됐다. 일부 건물터는 디딜방아 시설과 불에 탄 쌀인 탄화미가 많이 발견돼 용도가 창고로 추정됐다.

조사단은 독특한 성벽 축조기법, 성곽 내 건물 배치 측면에서 양성리 성곽 유적이 중요한 자료라고 강조했다.

최길동 기자
최길동 기자 kdchoi@kyongbuk.com

영덕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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