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태준 포스텍 인문사회학부 교수
원태준 포스텍 인문사회학부 교수

 

1926년 5월 초, 영국에서 백만 명의 광부들이 실직하면서 영국 노동조합회의(Trades Union Congress)가 이들과의 동정파업을 선언하자 5월 4일에 운수 노조, 항만 노조, 인쇄 노조, 가스 및 전기 노조, 철강 노조, 화학 노조 등에 소속된 노동자 2백만 명이 총파업에 돌입하였다. 불과 9년 전인 1917년의 러시아의 볼셰비키 혁명 및 공산주의 국가 소련의 수립에 대한 충격이 채 가시지 않았던 영국의 일반 시민들은 이러한 노동자들의 집단행동이 영국의 공산화로 이어질 것을 크게 우려하였고, 이에 노동자들이 자리를 비운 일터에 나가 대신 일함으로써 총파업이 사회에 미칠 충격을 최대한 줄이고자 하였다. 모피 코트에 진주 목걸이를 착용한 귀부인들이 자신들도 처음 타보는 시내버스를 운전하며 승객들을 운송하고, 말쑥하게 양복을 차려입은 대학생들이 생필품을 담은 승합차를 몰고 배달에 나서는 등 무려 3만여 명의 자원봉사자들이 전면에 나서서 파업으로 인해 부족해진 일손을 메꾸었다. 이러한 시민들의 노력이 총파업에 따른 혼란과 불편함을 크게 해소했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상황이 아무리 어려워도 우리의 삶의 방식은 절대로 포기하지 않는다’는 의지와 사기로 충만했던 일반 시민들을 설득할 수 없었던 노동조합회의가 결국 항복함으로써 9일 동안 영국 전역을 올스톱시킨 1926년의 총파업은 성과 없이 막을 내렸다.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한 국내 마스크 수요 폭증을 예상하지 못 하고 중국으로 수 억장의 마스크가 유출되는 사태를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여 지금의 ‘마스크 대란’ 사태를 자초한 현 정부의 무능함과 소심함, 그리고 무책임함은 이제 놀랍지도 않다. 이제 와서 정부는 자신들의 헛발질을 만회하기 위해 공적 마스크 비율을 마구잡이로 올리고 매입 가격도 마구잡이로 낮춤으로써 마스크 생산업체들의 주리를 틀고 있다. 물론 정부의 판단 착오를 틈탄 몇몇 마스크 유통업체들의 비양심적인 영리 추구 행위로 인해 이제 대란 해결을 위한 국가의 강력한 개입은 어쩔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지칠 때로 지친 국민은 정부가 어떻게 해서라도 마스크를 안정적으로 공급해주기를 애타게 바라고 있으며, 무능함을 ‘쇼통’으로 덮는데 익숙한 이 정부는 자영업자들이 운영하는 사기업을 무슨 공기업에 상명하달하듯 닦달하여 필요량을 쥐어짜 냄으로써 국민의 분노를 해소하고자 할 것이다.

마스크 대란은 결국 시간이 지나면 종결될 것이다. 하지만 정말 심각한 문제는 그 이후부터이다. 문재인 정부는 3년도 안 된 집권 기간 동안 무려 스무 차례에 걸쳐 부동산 대책을 내놓을 정도로 시장경제 논리를 이해하지 못하고 이해하고자 하지도 않는다. 이런 정부의 입장에서 국가의 강력한 개입으로 인한 마스크 대란 사태의 종결은 자신들의 반(反)시장경제 정서를 정당화해주는 최고의 사례이자 국가의 지속적이고 깊숙한 시장 경제 개입의 빌미를 제공해주는 최고의 전례일 수 밖에 없다. 사회적 위기 발생 시 이윤 추구에 급급한 기업들의 횡포를 다스리고 필요한 자원이 국민에게 고루 돌아가기 위해서는 국가의 막강한 시장경제 개입이 불가피하다는 호소로 국민을 유혹하며 기업과 기업인들에 대한 고삐를 더욱 조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하지만 1926년 영국 총파업 당시 사회로 쏟아져 나온 시민 봉사자들처럼 우리 국민은 대한민국의 발전과 번창이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주의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물론 완벽한 시스템이 아니기에 허점을 악용하려는 기회주의자들은 항상 도사리고 있다. 하지만 국가가 기업 경영에 속속들이 개입하여 만기친람(萬機親覽)하는 시스템이야말로 우리 경제의 창의성과 혁신성을 무너뜨리고 결국 모두의 공멸을 불러올 것이다. 어려운 시기일수록 흔들리지 말고 ‘포스트 마스크 대란’ 시대에 발생할 수 있을 ‘달콤한 속삭임’을 경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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