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는 죽을 때 슬픈 쪽으로 쓰러진다.
늘 비어서 슬픔의 하중을 받던 곳
그 쪽으로 죽음의 방향을 정하고야
꽉 움켜잡았던 흙을 놓는다.

새들도 마지막엔 지상으로 내려온다.
죽을 줄 아는 새들은 땅으로 내려온다.
새처럼 죽기 위하여 내려온다.
허공에 떴던 삶을 다 데리고 내려온다.
종종거리다가
입술을 대고 싶은 마지막 땅을 찾는다.

죽지 못하는 것들은 모두 서 있다.
아름다운 듯 서있다.
참을 수 없는 무게를 들고
몸을 떨고 있다.


<감상> 나무는 죽기 전부터 그리움 쪽으로 몸을 굽힌다. 그리움이 있기에 슬픔도 자리를 잡는 법이므로, 죽을 때 슬픈 쪽으로 쓰러진다는 말은 성립된다. 제 아무리 9만 리 장공을 나는 대붕(大鵬)이라도 허공에 뜬 욕망을 데리고 지상에 내려온다. 이 세상에서 가장 공평한 것은 죽음이므로 부귀공명을 누린 자도 묻히고 싶은 땅을 찾는다. 누구나 죽음을 맞이하기에 아집에서 벗어나 다른 존재를 포용하는 게 가능해진다. 죽지 못한 것들은 아름답다는 말은 너무나 역설적이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모르고, 무거운 욕망의 덩어리를 머리에 인 채 떨고 있으니.(시인 손창기)

저작권자 © 경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