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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공산을 걷다] 4. 솔잎에 푸른 기운 감돌면 동면서 깨어 기지개 켜는 숲
[팔공산을 걷다] 4. 솔잎에 푸른 기운 감돌면 동면서 깨어 기지개 켜는 숲
  • 임수진 소설가
  • 승인 2020년 03월 12일 21시 24분
  • 지면게재일 2020년 03월 13일 금요일
  • 12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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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공의 막 찢으며 부는 바람 싸한 겨울맛 끝에 상큼한 봄향 묻어나
서당마을

서당마을을 가기 위해 바람의 길에서 낮은 능선을 따라 걸었다. 삐뚤빼뚤, 좁고 고불고불한 길이 끝없이 이어졌다. 얼핏 보면 이전에 걸었던 길과 별 차이가 없어 보이지만 풍경의 결과 색에 미세한 차이가 느껴진다. 메말랐던 수피가 촉촉해지면서 솔잎에 푸른 기운이 돈다. 진달래 가지는 젖니 돋는 아기처럼 바람이 불 때마다 입을 오물거린다.

친절힌 표목

동면에서 깨어 기지개 켜는 숲에 무한한 신비가 감춰져 있다. 새들은 숲의 내밀한 질서를 이해했다는 듯이 가지에서 저 가지로 옮겨 다니며 수다를 떤다. 이곳 길은 유난히 울퉁불퉁하다. 땅속에 있어야 할 뿌리가 땅 밖으로 나왔다. 시련과 비극을 겪은 주인공처럼 굴곡지다. 뿌리를 내려다보고 섰으니 알렉스 헤일 리가 쓴 소설이 생각난다.

아프리카 작은 마을에 많은 이의 축복을 받으며 한 아이가 태어났다. 아이의 이름은 쿤타킨테였다. 열일곱 살이던 그는 나무를 하러 숲에 갔다가 백인에게 납치된다. 노예가 된 쿤타킨테에게 자유와 인간의 존엄성 따윈 사치였다. 비참한 생활 속에서도 그는, 고향과 조상, 자신의 본래 이름을 기억하려 애썼다. 자유에의 열망도 놓지 않았다. 그러한 집념은 결국 그를, 그가 원하는 삶으로 이끄는 계기가 되었다. 쿤타킨테를 비극적 운명에 굴복하지 않게끔 잡아준 건 뿌리였다.

뿌리로 뒤엉킨 오솔길

존재의 근원에 대해 생각다보니 어느새 오솔길의 끄트머리에 도착했다. 갈림길에 표목이 친절하게 서 있다. 정면에 하동정씨선산 석비가 여행객을 맞아준다. 서당마을은 오른쪽이었다. 비슷비슷한 구조의 양옥주택은 지극히 평범했지만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이곳에서 많은 고시합격생이 나왔다.

서당교에서 바라본 마을

마을은 조용했다. 골목을 걸어 다녔다. 꼭 닫힌 대문이 굳게 다문 입술 같다. 그냥 가야 하나 할쯤 2층 양옥집 베란다에 나와 선 아주머니 한 분을 만났다. 올려다보며 인사를 건넸다. 요즘도 하숙치는 집이 있느냐고 물었다. “아이고, 하숙은 무슨. 다 한때죠. 고시 공부하겠다고 찾아오는 사람도, 하숙 칠 사람도 없어요. 우리 집도 옛날에 하숙쳤어요. 연탄 때서 밥하고 텃밭서 기른 고추와 애호박 따서 된장 끓이고. 우리 엄마 손맛이 좋아서 그분들 밥 두 그릇씩 먹고 그랬어요.”

이곳 어딘가에서 발견되었다는 조선시대 서당터에 대해 물었다. “말은 들었는데 위치는 몰라요. 마을 터가 좋긴 하죠. 합격자가 수두룩했으니까. 그럼요. 마을이 깨끗하고 산세 좋고 물 맑아서 공부하기 최고였죠. 몸은 고달파도 그때가 살맛났다고 우리 엄마 돌아가시기 전까지 말씀하셨어요. 보람이고 자랑이었으니까요.” 지난 시간을 말해주는 아주머니 얼굴 위로 햇살이 일렁였다.

마을 앞 서당교를 건너 대로변으로 나왔다. 백안삼거리로 바로 가려다 방짜유기박물관이 궁금해서 반대편 길로 접어들었다. 119 안내센터를 끼고 도니 가로숫길이 짜잔, 나타났다.

시인의 길
석공예와 팔공산이 조화롭다

어째 분위기가 근사하다 했더니 시인의 길이다. 잘생긴 돌에 유명시인들 시가 곳곳에 새겨져 있다. 야외에서 시를 만나니 더욱 반갑다. 정일근 시인의 『전봇대』를 옮겨 본다.

눈 내리는 은현리 겨울 들판을/전봇대가 걸어가신다/펄펄 날리는 눈보라 맞으며/푹푹 빠지는 외눈 발자국 남기며/들판 건너 마을 지나/가파르고 험한 산길 따라/키다리 아저씨가 찾아가시는 곳/ 솔발산 7부 능선에 웅크리고 있는/하늘 아래 저 먼 첫 집/저녁마다 전봇대가 찾아가면/녹슨 양철지붕 낮게 인 오막살이에/ 삼십 촉 알전구/ 참, 따뜻하게 켜진다

석공예품과 하늘
기도

잘 쓴 시를 읽으면 가슴에 삼십 촉 알전구가 켜진다. 이 맛에 시를 읽는다. 도로 양옆엔 석공의 정에 다듬어진 멋진 조각품이 여행객의 눈을 즐겁게 한다. 고인돌, 거북, 돌하르방, 마리아상, 특히 남근석이 많이 보인다.

방짜유기박물관
방짜유기 박물관 내부

방짜유기박물관은 생각보다 컸다. 이곳은 중요무형문화재 제77호 이봉주 유기장이 소장하고 있던 유물(172종, 1482점)을 대구시에 기증해서 대구광역시에서 건립했다.

고지도속의 납청

박물관에 들어가서 첫 번째로 마주한 건 양쪽 벽면에 세워진 특대징이었다. 보통 불교에서 의식을 시작할 때 치는 쇠북으로 지름이 161cm, 무게가 98kg이다. 세계 최대 징으로 소리의 울림이 매우 맑고 웅장하다.

방짜유기 제작 과정

주물로 찍어낸 종은 음의 파장이 직선으로 뻗어 나가지만 방짜로 만든 징은 맥놀이 현상이 일어난다고 한다. 맥놀이 현상이란 진동수가 다른 두 개의 소리가 서로 간섭하여 소리가 커졌다 작아졌다 하는 것인데 대표적인 게 에밀레종이다.

아름다운 방짜유기 종

청동의 소리를 선조들은 놋쇠 소리라고 했다. 방짜 쇠의 소리야말로 한민족의 소리라 한 이종호 박사의 글에 깊게 공감한다.

옛날 유기 상점

방짜유기는 구리 78%에 주석 22%를 합금한 놋쇠를 고온에서 망치로 두들겨가며 만든다. 이렇게 만든 유기는 다른 유기에 비해 황금빛 광택이 뛰어나고 음식의 신선도는 오래 유지된다. 물을 담아두면 미네랄 성분이 생성되고 해충을 쫓아주는 효용은 물론 인체에 치명적인 0-157균이 사멸하였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4인 주안상
경상도 지역 식기류

전시장 내에는 방짜유기 변천사와 양반들이 사용하던 타구며 주발, 반상기, 옥식기, 주안상, 제례상 차림, 경상도지역 식기 등 볼거리가 많다. 꽹과리와 놋그릇에 남아 있는 메자국(망치 자국)이 자연스러움에 멋을 더한다. 건강 식기인 방짜유기가 관심에서 멀어진 건 일산화탄소와 만나면 색이 변하는 연탄이 일반화되고 편리한 스테인리스가 보편화되면서다. 한동안 잊혔던 유기는 건강에 관심이 많아지면서 새롭게 선보이고 있는 추세다.

팔공문화원
배를 닮아서 백안

 

옛 문화와 만나느라 시간이 꽤 흘렀다. 오늘의 마지막 코스인 팔공문화원을 향해 빠르게 걸었다. 백안동은 마을 지세가 배를 닮아 배안으로 불리다 동네가 커지면서 모두 편안하라 해서 백안동이 되었다. 지명답게 고요하고 평화롭다. 불현듯 따뜻한 한 끼가 그립다. 팔공산하면 송이버섯이라 30년 전통 순두부송이찌게 집 문을 열고 들어갔다. 소박하지만 집밥을 아주 맛있게 먹은 기분이다. 밖으로 나오니 허공의 막을 찢으며 바람이 분다. 소리는 요란하지만 경칩을 지나선지 싸한 겨울맛 끝에 봄향이 상큼하다.

 

 

임수진 소설가

 

◇여행정보
△방짜유기박물관
방짜유기를 주제로 한 전문박물관으로 고유문화유산인 방짜유기 제작기술과 변천사를 볼 수 있다. 우리 것의 아름다움과 우수성을 아이들에게 알려줄 체험 공간
△백안삼거리에서 올 경우 = 서당마을→ 시인의 길 →방짜유기박물관→ 북지장사

 

화로
특대징
징과 꽹과리
놋그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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