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서 중 가장 많은 6절 구성·확기적 발상 눈길

화엄사상의 연구
동아시아 화엄교학의 형성과 전개 과정을 조망하고 의상과 원효 등 신라승려의 큰 역할에 주목한 최초의 연구서가 출간돼 주목을 받고 있다.

이시이 코세이(石井公成) 교수의 ‘화엄사상의 연구’(김천학 역, 민족사)는 동아시아 화엄교학에서 신라불교의 위상을 재정립한 책이고 동아시아 불교사상의 지도를 새로 그렸다

‘화엄사상의 연구’는 동아시아 화엄교학의 형성과 전개 과정을 조망하고, 의상과 원효 등 신라의 승려가 그 과정에서 얼마나 큰 역할을 했는지 심도 깊게 연구한 결과물이다. 이로써 신라불교의 위상을 재정립하고, 동아시아 불교사의 지형을 새로 그리는 등 화엄사상 연구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한 매우 뜻깊은 책이다.

이시이 코세이 교수는 이 책 ‘화엄사상의 연구’를 통해 화엄교학의 형성과 전개 과정에서 한반도의 승려가 큰 역할을 하였을 뿐 아니라, 중국불교에 많은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는 사실을 밝혀낸다. 입당해 지엄(智儼)에게 사사하고, 동문의 후배인 법장과 친교를 거듭했던 의상(義湘)이나, 또 신라에서 방대한 저술을 남긴 원효(元曉)가 법장에게 큰 영향을 끼친 것은 그러한 예이다. 이로써 화엄교학은 당시 동서 교류의 기운 가운데 자라났던 교리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 책의 목차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저자는 3장(신라의 화엄사상)과 5장(신라 화엄사상 전개의 일측면)을 할애해 원효와 의상의 화엄사상에 대해 폭넓게 서술하고 있다. 원효와 의상의 화엄사상에 대해 이렇게 많은 지면을 할애해 심도 있게 연구한 일본 불교학자는 처음이라고 할 수 있다. 이로써 이시이 코세이 교수는 동아시아 화엄교학에서 신라 화엄학의 위치와 중요성 등을 새롭게 부각시키고 인식 ·정립시킨다.

이시이 코세이 교수의 신라불교에 대한 평가는 종래 학자들과는 매우 다르다. 이전은 신라불교를 하나의 조그만 흐름으로 생각했다면, ‘화엄사상의 연구’에서는 신라불교를 역동적인 흐름의 중심에 두고 있다.

이 책의 제3장 신라의 화엄사상은 본서 가운데 가장 많은 6절로 구성돼 있다. 그리고 제5장 신라 화엄사상 전개의 일측면을 2절로 구성했다. 제3장 신라 화엄사상을 6절로 전개해 의상과 원효의 사상 성립 배경과 특색을 다루고, ‘화엄경문답’과 ‘석마하연론’을 신라불교에 편입시킨 학문적 공적을 쌓은 후에 제5장에서 신라 화엄사상의 전개를 통해 ‘석마하연론’과 ‘금강삼매경’, 그리고 의상계 사상의 관련을 다룬 것은 동아시아 불교사상의 지도를 바꿔 놓은 획기적인 발상이다.

이 책은 제1장에서 지론종에서의 ‘화엄경’해석이 나오며 ‘화엄경양권지귀(華嚴經兩卷旨歸)’를 상세하게 분석함으로써 지론종과 지엄 이전 화엄 태동기와의 관련을 중시하고 있는데, 이 또한 이 책이 화엄종의 사상을 새롭게 해석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제2장에서 지엄의 성기설(性起說)을 전면에 내세우고 성기설의 일환으로서 부정과 무진을 강조하는 것은 그 이전의 지엄 연구자들이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사상 해석의 전환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제3장 신라의 화엄사상은 앞서 말했듯이 어느 장(章)보다 절(節)이 많다. 이시이 코세이 교수의 화엄사상사관에서 신라불교(신라화엄)가 어느 정도 중요한지는 이러한 분량으로도 짐작 가능하다.

이 장에서는 의상에게 영향을 미친 지론교학의 중요성을 서술하고, 원효 화쟁의 근거를 찾았다. 특히 원효 저술의 저작 순서를 추정한 것은 원효 사상의 변화를 읽을 수 있는 새로운 전환점을 마련한 것이다.

의상의 ‘법계도’의 배치는 독특하지만, 그 구성에는 중국 시적(詩的) 연원이 있다는 사실과 이이상즉설(理理相卽說) 역시 초기 중국불교와 지엄에게 그 사상적 연원이 있다는 사실을 밝혔다.

이것은 그동안 민족주의적 시각에서 의상의 특수성을 바라보던 관점의 폐기를 종용하는 연구가 되었다. 설왕설래했던 법장 찬 ‘화엄경문답’의 실체를 밝혀 신라 의상의 사상과 공통점을 찾아내어 고 김상현 선생이 ‘지통기’의 이본이라는 주장을 하게 되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줬다.

제4장에서는 법장의 화엄사상이 지엄과 의상 그리고 원효의 사상적 영향하에 구성됐다는 점을 밝히고 있다. 이러한 영향하에서 법장만의 사유, 즉 무진과 중중무진의 논리가 계발된 것이다. 다만, 법장의 교학은 너무나 이론적인 탓에 지엄이나 의상의 실천적 풍토가 약해진 것도 사실이라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그리고 고래(古來)부터 신라 위찬설이 주장됐던 ‘석마하연론’의 성립에 대해 신라성립설을 주장한 것은 획기적인 사건이다. 동시에 ‘석마하연론’은 해동소 기신론과 함께 이 책은 근대 중국불교에 영향을 주었다는 것을 고찰했는데, 이 역시 우리나라에서 볼 때는 놀라운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제5장은 이러한 앞의 주장을 심화시킨 내용이다. 여기에는 의상, 원효, 법장의 영향이 보인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다. 아쉬운 것은 한국의 연구자들이 ‘석마하연론’의 신라성립설을 심화시키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곽성일 기자
곽성일 기자 kwak@kyongbuk.com

행정사회부 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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