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화철 한동대 교수
손화철 한동대 교수

믿으실지 모르겠지만, 나는 이 코로나19의 비상상황에서 상호 비난에 몰두하고 있는 정치인들을 그러려니 받아들인다. 그들은 선거철 정치인답게 행동하고 있다. 더 멋진 정치인도 있을 수 있겠지만, 그런 기대야 버린 지 오래다. 정작 답답하고 원망스러운 것은 언론과 거기 등장하는 관련 전문가들이다.

지난 몇 주간 동안 마스크 수급 문제가 모든 사람을 불편하고 불안하게 했다. 마스크는 엄연히 시장에서 유통되는 물건이고 수요가 늘어나니 수급에 문제가 생긴 건 당연하다. 모두 많이 고생하고, 여러 시행착오를 거쳐 공적 마스크 판매에 수령 확인 애플리케이션까지 만들어 약간 진정이 되었다. 그러나 그 과정의 해결과는 별도로, 전 국민이 마스크가 없어 패닉 상태에 빠지게 된 일에 대해서는 복기가 필요하다.

마스크와 관련한 혼란의 시간 동안 수많은 기사와 각종 인터뷰가 쏟아지는 중에 정작 코로나19와 마스크 사용과 관련해 알고 싶은 정보를 얻은 경우는 손에 꼽는다. 도대체 ‘비말’이 무엇인지는 아직도 궁금하다. 굳이 ‘비말’이라 하는 것은 내가 아는 그 침이 아니어서인가? 혹시 비말은 내가 말을 하지 않고 있을 때도 발사되는가? 어떤 경우이든, 그 비말의 전파를 막기 위해 꼭 황사 마스크 수준의 일회용 종이 마스크가 필요한가? 천으로 된 방한 마스크가 완벽하지는 않겠지만 내가 아는 수준의 침은 막을 수 있을 것도 같은데 과연 아닌가? 아무 소용이 없지 않다면 종이 마스크를 착용하거나 아예 착용하지 않은 경우에 비해 전염의 위험을 어느 정도나 막아주는가?

물음은 단순한데 답을 찾기가 어렵다. 언론에 등장하는 의료 전문가들이 친절한 설명 대신 미세한 차이와 가능성에 집착하거나 거대담론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일선에는 말단 의사와 간호사들이 사력을 다해 전염병과 싸우고 사람들은 마스크 때문에 우울에 빠져가는데, 언론에 한 마디 말할 권력을 가진 전문가들은 언제 어떻게 왜 마스크를 쓰고 어떻게 벗어야 하는지가 아니라 논문 발표와 정치 평론 흉내를 내고 있다. 평범한 사람들은 대통령의 낙관과 비관에 별 관심이 없다. 마스크가 없으면 어떻게 해야 하고 집안에 굴러다니는 천 마스크는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가 궁금하다. 좋은 마스크가 가장 좋다는 말이야 나도 할 수 있다.

더 슬픈 것은 전문가들이 필요한 정보를 제공해도 그게 보도가 될지는 전혀 장담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대다수 언론은 코로나19 국면에서 그야말로 쓰레기 인증을 갱신했다. 지난 몇 주간 우리 언론이 공포와 상호불신의 조장 이외에 무슨 일을 했는지 묻고 싶다. 한 보수 언론사는 보건소가 환자 진료를 거부했다는 기사를 크게 보도했다가 오보임이 밝혀지자 설명 없이 기사만 수정했고, 기자협회로부터도 보도의 편향성이 선을 넘었다는 지적을 받았다. 다른 언론사들도 기사의 선정성과 사회적 책임 방기로 보면 오십보백보다. 최소한의 양심과 양식이 있다면, 이런 비상 상황에 대형 언론사만이라도 기사 클릭 수의 유혹에서 벗어날 수는 없는가. 이때만이라도 사실을 이리저리 비틀고 허황된 분노를 돋구어 선거에 한 발 넣을 궁리를 멈출 수는 없는가. 대중의 필요를 잘 모르는 의료 전문가에게 적절한 질문을 하기 위해 노력할 수는 없는가.

전염병이 돈다 해서 정치인더러 의사가 되라 하지 않는다. (물론 그리할 수만 있다면 누구처럼 지지율이 확 올라가지만 말이다) 그런데 이런 비상 상황에 전문가가 정치를 하고, 평소 자기 정체성이 혼미하던 언론인이 끝끝내 본분을 기억해내지 못하는 건 문제다. 모두의 신경이 날카로워진 때인 만큼, 이제라도 정신을 차리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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