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을 찍는다. 찍는 것은 지나가는 풍경에 브레이크를 거
는 것이다. 찍는 순간, 무한 중첩으로 명멸하며 향진하던 빛
다발이 돌연 하나의 색과 모습을 띠고 내 앞에 도착한다. 확
률의 구름 속을 어른거리던 우연이 필연의 인과를 입고 선명
해진다. 나는 너를 찍었다. “차 한잔 할까요? 나라는 타인에
게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이제부터 당신은 나의 단일한 기
억 속에 존재할 것입니다.” 그러니 아직 내가 모르는 먼 곳에
서 예쁘고 무사한 하루를 상심하는 사람아, 부디 내 눈에 들
지 마라. 내 눈이 닿는 곳마다 폐허가 도사리고 있다. 내가
카메라로 너를 찍는 것은 도끼로 너를 찍는 것과 같은가 다
른가. 나는 찍고 또 찍는다. 그 많은 꽃 중에 하필 너를 찍는
다. 나는 눈이라는 미지의 도끼를 가졌다. 137억 살의 눈이
아름다운 너의 모서리를 스친다.


<감상> 사진을 찍으려면 고개를 들거나 한 쪽 눈을 감아야 한다. 눈을 감으면 고요가 밀려오고 풍경의 의식이 숨 쉰다. 수많은 풍경 중에, 수많은 꽃들 중에 하필 너를 폐부 깊숙이 찍었던가. 그 짧은 셔터 소리만큼 몇 초 만에 내 망막과 기억 속에 꽂힌다. 오히려 너를 찍은 것이 아니라 나를 찍은 것이고, 도끼로 내 발등을 찍어 피가 철철 넘친다. 그 때부터 아름다움보다 더 예쁜 그대를 향해 내가 상심하므로 내 눈동자엔 온통 폐허로 가득하다. “부디 내 눈에 들지 마라”고 말하기엔 너무 늦었다. 몇 광년의 눈빛이 스쳐야 예쁜 너의 모서리에 닿을 수 있을까. (시인 손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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