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식 포항지역위원회 위원·시인
이상식 포항지역위원회 위원·시인

세계사는 매력적인 학문이다. 허구의 상상력인 소설과 달리 실제로 발생한 사건을 다룬다. 엄연한 현실로 존재한 일들은 꾸며낸 이야기 이상으로 흥미를 유발한다. 가공된 음식보다는 자연산 식재료가 입맛을 돋우는 법이다. 물론 막후에 가려진 진실을 밝힐 책무는 후세의 사가들 몫이다.

과거는 그 자체로 역사의 일부가 된다. 개인의 삶은 인생사, 국가의 내력은 국사로 표현된다. 그것은 심오한 의미가 내포된 단어다. 예전에 종결된 것으로 여기느냐, 혹은 지금도 진행되는 무엇으로 보느냐에 따라 견해가 갈린다. 소위 ‘역사관’이라 일컫는다. 똑같은 사안을 두고도 해설이 다른 까닭이다. 흔히들 영웅 사관은 사람이 사건을 만들고, 경제 사관은 사건이 사람을 만든다고 주장한다.

우리 지역 구미엔 ‘박정희 대통령 생가’가 있다. 지난 설날 연휴에도 방문했다. 나의 이십대 시절이 각인된 현대사이기에 조금은 리얼하게 다가온다. 책으로 접하는 조선 시대와는 차원이 다른 친밀한 기억이다.

아래쪽 민족중흥관에는 다양한 물건이 전시됐다. 새마을 운동에 사용된 물품과 생전에 받았던 선물이 보관됐다. 존슨 미국 대통령이 보낸 시계와 페르난도 페루 대통령의 취임 축하 은쟁반, 그리고 진품은 기록관에 입고된 우차 금동상 복제품까지.

가장 눈길을 끄는 코너는 당시 청와대 집무실을 재현한 공간이다. 뒤편의 봉황 문장을 중심으로 ‘유비무환’ 액자와 ‘대한민국 헌법’이 좌우 벽면에 걸렸다. 특히 책상 앞쪽엔 지구의가 놓였다. 당신은 그것을 돌리며 서독의 광부와 베트남 파병과 중동의 일꾼을 고뇌하지 않았을까.

세계사 접근의 키워드는 무수하다. 역사서를 탐독하면서 놀랐던 사실들 가운데 하나는 ‘이렇게도 대면이 가능하구나’ 하는 점이다. 왕조와 영토와 인물이 핵심인 편년체와 기전체 서술이 대다수이나, 때로는 바다와 음식 심지어 우연과 사치로도 세계사를 논한다. 지도로 전개하는 사학도 그중의 일례이다.

펑크록 밴드 크라잉넛이 부른 ‘룩셈부르크’는 가사가 이채롭다. 요지는 꿈을 펼치기 위해 세계 지도를 함께 보자는 내용. 짧은 문장으로 나라마다 특색을 그렸다. 중국은 ‘사람이 너무 많은 차이나’라 하고, 한국은 ‘이제 곧 하나가 될 코리아’라 읊었다. 그럼 미국은 어떨까. ‘전쟁을 많이 하는 아메리카’ 은근슬쩍 반미다.

나는 세계사를 즐겨 읽는다. 거대한 제국을 이룩한 국가들, 예컨대 로마사·중국사·영국사·미국사를 좋아한다. 지도를 곁들여 읽으면 이해가 빠를뿐더러 재미를 더한다. 동북아시아 지도를 펼치면 우리나라가 경이롭게 느껴진다. 중국과 러시아와 일본이라는 골리앗 틈바구니에서 존립한 다윗의 형국이다.

인류 역사상 수만 개의 종족과 수천 개의 문명이 나타났다. 대부분 처절한 경쟁의 와중에 사라지고 일부만 살아남았다. 지금껏 건재한 십만 이상 인구 민족은 겨우 300여 개에 불과하다. 나머진 거대 조류에 휩쓸려 융합됐다.

중국 대륙을 보면 실감이 난다. 무려 55개에 달하는 소수 민족이 국체를 이룬다. 실제론 수백 종류에 달한다. 그들은 일억 넘는 인구에 삼분의 이에 해당하는 거주 면적을 가졌다. 중국은 조선족, 러시아는 카레이스키(고려인)라 부르는 한국인도 약소국 민족이었다. 물론 지금은 전혀 아니다. 강대국 속에서 생존을 견지한 조상들 지혜에 자부심을 갖는다. 게다가 세계 10대 경제 대국이다. 생채기 없는 영광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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