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사무소를 지나다 보았다
다리가 주저앉고 서랍이 떨어져 나간 장롱

누군가 측은한 눈길 보내기도 했겠지만
적당한 균형을 지키는 것이 / 갑절의 굴욕이었을지 모른다

물림쇠가 녹슬고 / 문짝에서 먼지가 한 움큼씩 떨어질 때
흔쾌한 마음으로 장롱은 노래했으리
오대산의 나무는
오대산의 햇살 속으로 돌아가네 잠시 내 살이었던
못들은 광맥의 어둠으로 돌아가네 잠시 내 뼈였던

저의 중심에 무엇이든 붙박고자 하는
중력의 욕망을 배반한 것들은 아름답다
솟구쳐 쪼개지며 다리를 꺾는 순간
비로소 사랑을 완성하는 때
돌팔매질당할 사랑을 꿈꾸어도 좋은 때

죽기 좋은 맑은 날 / 쓰레기 수거증이 붙어 있는
환하고 뜨거운 심장을 보았다


<감상> 장롱은 누군가의 집에 화려하게 놓여 있어도 제 응달을 가지고 있었구나. 사람이나 사물은 원래 적당한 눈치와 균형 속에서 응달진 풍경을 지니고 있었구나. 적극적으로 상처와 대면하는 과정을 거쳐야 비로소 뜨겁게 사랑을 완성하는구나. 쪼개지고 돌팔매질 당하더라도 상처를 거부하지 말아야 맑은 날, 환하고 뜨겁고 푸른 심장이 마구 뛴다. 하여 장롱은 오대산 나무로, 못들은 광맥으로 다시 태어난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구나.(시인 손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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