푹푹 찌는 무더위를 피해 마을 사람들은 그늘로 찾아들었다. 그 바람이 텅 빈 마을 위로 거대한 비구름이 서서히 다가왔다. 하지만 비구름은 더위와 가뭄에 찌든 마을엔 한 방울의 비도 내리지 않고 엉뚱하게도 바다 위에 많은 비를 퍼부었다. 그리고 나서 비구름은 산봉우리에게 큰 소리로 자랑했다.

“어때, 내 솜씨가. 근사하게 한바탕 퍼부었지?” 산봉우리는 혀를 끌끌 차며 핀잔을 주었다. “네 자랑을 듣고 보니 좀처럼 화를 내지 않는 나도 화가 나는구나. 선심이란 필요할 때 필요한 곳에 베풀어야지 먹을 물조차 없어 쩔쩔매는 마을 사람들에게 단비를 내렸다면 너는 두고두고 사람들로부터 칭송을 받았을 텐데…바다는 네가 돕지 않아도 항상 물이 넘치는데 비를 잘못 뿌렸어.” 선심도 때와 장소를 가려서 베풀어야 한다는 러시아의 우화 작가인 크뤼로프의 우화다.

장자에도 다급한 처지에 있는 경우를 두고 이와 비슷한 우화가 있다. ‘수레바퀴 자국에 괸 물에 떨어진 붕어’라는 뜻의 ‘학철지부(涸轍之鮒)’다. 늘 가난에 쪼들리던 장자가 강물 감독관을 찾아가 양식을 좀 꾸어달라 했다. 감독관은 자기가 곧 고을에 가서 세금을 거둔 뒤 300금을 빌려주겠다고 했다. 그 말을 듣자 장자가 즉석에서 ‘학철지부’의 우화를 지어냈다.

“제가 여기로 오는데 저를 부르는 소리를 듣고 돌아보았더니 수레바퀴 자국이 파인 곳에 붕어 한 마리가 있었습니다. 붕어가 다급하게 말했습니다. ‘한 바가지 물로 나를 살려주십시오’ ‘내가 오나라 월나라 왕에게 가서 두 왕과 협의해 서강에 물을 끌어다가 너를 구해주겠다’고 대답했습니다. 붕어는 화를 내면서 말했습니다. ‘나는 지금 한 바가지 물이 당장 급한데 그때는 차라리 나를 건어물가게에서 찾는 게 나을 거요.”

자기 배부르면 종의 배고픔을 모르는 사람이 정치인이다. 그래서 국민의 여망과는 동떨어진 헛나팔을 분다. 코로나19 사태로 직격탄을 맞은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에 대한 금융지원 대책이 쏟아지고 있지만 현장에는 돈이 돌지 않아 아우성이다. “각종 서류심사에만 두 달이 걸린다”며 “다 망하고 나서 돈 들어오면 뭐하나”하는 하소연이 줄을 잇고 있다. ‘수레바퀴 자국의 붕어 처지’를 정부는 모르나.

저작권자 © 경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