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낮이 다른 책들 키순으로 정리했더니 책장에서 파도 소
리가 들린다. 둥둥 떠다니는 달을 건졌는데 활어였다. 성대가
없는 활어의 이야기는 유효기간이 없다. 내 활활 죽고 나면
지느러미 꽁꽁 묶여 횟집 저울추처럼 파들거릴 활어

움푹 패인 곳에서 건져 올린 물미역 같은 가름끈 옮겨가며
읽은 책 또 펼쳐 읽는다. 당신을 읽는데 내가 젖는다. 갈매기
깃털 닮은 책갈피가 할딱이는 해변, 난독의 해안선 한 권을
온전히 읽지 못하겠다. 뭉툭한 눈이 삐댄 염분 탓이다.

비린 해초가 더듬더듬 코끝에 매달리는 시간이다. 높고 낮
음이 없는 저 수평선, 마지막 페이지를 덮는 건 흰 구름, 그
의 몫이다.


<감상> 자잘한 실개천이 바다에 닿듯, 작은 공간에 온갖 책들이 낱낱이 스며들어 출렁인다. 쌓인 책을 겨우 정리하면, 바다가 품 열어 주어 철썩 파도소리가 들려온다. 시인은 활어처럼 드넓은 책 속을 헤엄쳐 가는 동안, 때로는 난독을 겪기도 하고, 작가에게 젖어들기도 했을 것이다. 책 읽는 과정을 바다 읽는 과정으로 빗댄 시인의 비유가 참으로 푸르고 둥글다. 시인은 책장과 얽힌 추억을 꺼내 소금기를 털어내며 혼자 밝아지기도 하고 어두워지기도 했을 것이다.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는 건 구름이지만, 첫 페이지를 여는 것은 새벽녘 파랑이므로 시인은 벽에 걸린 바다 만평을 마음대로 부리는 마음 부자다.(시인 손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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