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혁 학강미술관장
김진혁 학강미술관장

대구경북을 대표하는 많은 현대 건축물이 있다. 그 수많은 건물 중 수십 년 동안 아름다운 건축미학을 자랑하는 변함없는 삶의 공간이 있다.

경북실내체욱관(현 대구실내체육관), 대구시민회관(현 대구콘서트하우스), 만촌동 영남제일관문, DAC 대구문화예술회관, 경주 화랑의 집, 불국사 복원, 해인사 복원, 부석사 복원, 대전 충무체육관, 춘천실내체육관, 동아쇼핑 백화점, 서울 잠실야구장 등 우리지역 뿐만 아니라 전국의 많은 건축물을 한 사람의 열정과 노력으로 이루어졌다면 대단히 놀라운 사실이 아닌가? 이렇게 많은 멋진 건축물 건립을 진두지휘하고 설계한 사람이 있다. 대구시내 공평동에서 ‘대아건축’이라는 이름으로 설계사무소를 이끈 후당(厚堂) 김인호 선생이다.

김인호는 1932년 경북 금릉군 개령면 출생으로 김천고를 졸업하였다. 1958년 청구대학 건축과 졸업과 동시에 강사를 거쳐 1967년 청구대학 건축과 교수를 역임하다 학교를 그만두게 된다. 그 후 곧바로 전문건축디자인 회사인 대아건축을 기반으로 200여 건의 건축물을 설계하였다. 당시로써는 대단한 기록이었다.

필자는 전부터 약간의 인연으로 84년 여름날 대아건축사무소에 갔다. 후당 선생의 좁은 집무실에는 서적과 함께 신라시대의 많은 와당과 수막새 암막새가 켜켜이 놓여 있었다. 그러한 분위기로 보아 전통에서 현대적 만남을 추구하시는 분이란 첫 인상을 받았다.

후당 김인호 건축가

젊은 필자를 보고 감정이 통하였는지 “자네 우리미술 연구 많이 하게. 그리고 나이가 지남에 따라 불교 공부가 깊어지네, 특히 금강경 화엄경의 세계는 우리가 느끼지 못한 무한한 피안의 세계를 만들어 주지.”라고 힘주어 말씀하시던 기억이 난다. 약주를 좋아하셔서 대구시청 앞 한정식집에서 함께 다양한 예술론에 대해 주고 받았다. 술자리 마지막에 끝까지 자기세계를 한길로 매진하라는 덕담도 있었다. 그의 자택은 지금의 대명동 영남대학교 병원 정문 옆 2층 양옥에 마당이 깊은 집이였다. 거실에는 수촌 서경보 교수의 대형 글씨가 보였고, 선생의 큰 따님이 그린 대형 수묵담채인물화가 걸려 있었다. 안방에는 조선청화백자들도 배치되어 있어 그가 평소 얼마나 민족미술을 사랑하였는가를 알 수 있었다. 1980년 대 중반부터 재정적 압박 속에도 맥반석을 이용한 대구근교 온천개발, 남해 해금강 해상호텔건립, 남들이 생각하지 못한 북방New실크로드를 통한 유라시아 지상철 계획이 있었다. 이 유라시아 지상철 프로젝트는 부산-대구-서울-평양-신의주-심양-하얼빈-시베리아-모스크바를 관통하는 그야말로 획기적인 드림월드 프로젝트를 꿈꾸고 있었다고 한다. 실행되지 않았지만 미래에 우리가 꿈꾸는 프로젝트 중 하나로 일찍이 꿈을 현실화하는 비전을 제시하였다.

후배들에게 술을 잘 사주며 기분이 업되면 옆 사람 따귀를 때려 정을 표시한 인간미 있는(?) 건축거장으로 알려지기도 한다. 당시 고혈압과 쉬지 않는 열정으로 잠실 야구장과 1988년 DAC대구문화예술회관 현상설계 당선이 끝나고 진행과정 중 돌연 세상을 떠났다. 향년 57세였다. 대구예총회장 재임 시기였기에 대구예총장례식으로 진행되었다. 대구시민회관 광장에서 만장기가 펄럭이는 가운데 노제를 지냈다.

작고 3년 후 후진들에 의해 후당 김인호건축상이 재정되었고 많은 수상자가 배출되었다. 올해는 DAC대구문화예술회관 건립 30년이 되는 해이다. 그를 추념하여 후당 김인호 회고전이 11월 5일부터 12월 12일까지 진행된다고 한다. 57년의 삶의 궤적을 통한 대구경북의 건축과 미래의 건축사에 하나의 이정표를 제시하는 전시가 되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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