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내게 말단 공무원이라도 되라고
이름에 관(官) 자를 붙여줬는데
당신이 나를 버린 것처럼
나도 당신의 얄팍한 뜻에 등을 돌렸다
서로가 서로를 버리고 나니 / 야윈 냇물만 남았다
거기서 어머니가 묵은 빨래를 했다
비누를 치대고 방망이를 두들겨도
쉬 빠지지 않는 때는 모두 어머니 몫이었다
버리고 나니 머리에 얹고 싶은 관(冠)은
찾아오지 않고 시간의 틈서리에
어찌할 수 없는 때만 꼈다
웃음은 순간 깊이를 얻고 / 冠은 산산이 부서졌다 無冠은
냇물에서 노는 철새와 같아졌다
갔다 다시 오고, 취하는 것도 없이 떠나는
무량의 반복을 알게 되면 새가 될 줄 알았는데
날아가야 할 허공은 멀고
살아가야 할 이곳은 갈수록 무거워졌다
아직 내게 쓰고 싶은 冠이 남아 있단 뜻일까
아직 더러운 때가 되지 못한 것일까
어머니의 빨래는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감상> 아버지와 아들 사이는 불화하는 말들로 가득한가. 그 말들 사이에 늘 야윈 어머니가 계신다. 쉬 빠지지 않는 때는 부자지간의 때일 수도 있고, 마음에 병이 든 어머니의 때일 수도 있다. 이 시와 반대로, 무력유죄(無力有罪)를 경험한 나는 이십대 중후반에 관(官)을 위해 권력기관(7급 특정직)에 아주 가까웠다. 일찍 죽은 형님들 때문에 어머니는 권력과 돈은 싫으니 내게 낮게 살아도 선생님이 되라고 하셨다. 어머니 덕분인지 나는 아직 생존하고 있다. 철새처럼 자유로웠는지, 갈수록 삶이 무거워졌는지 잘 모르겠으나 더러운 때는 남아 있다. (시인 손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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