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윤정 안동대학교 사학과 교수
강윤정 안동대학교 사학과 교수

1912년 경학사가 무너지고, 독립운동기지 건설을 약속했던 동지들도 흩어졌다. 안정적인 산업기반이 없는 상황에서 독립운동은커녕 생활조차 가능할지 누구도 예단하기 어려웠다. 힘겨운 시간이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더러는 자금 마련을 위해 국내로 들어갔다. 안동의 류인식ㆍ이준형ㆍ이원일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그리고 더러는 완전히 고향으로 귀국했다. 안동의 임청각 매각 결정은 바로 이러한 배경에서 이루어졌다. 이상룡의 용단이었지만, 그 일을 맡은 사람은 아들 이준형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상룡은 1913년 남만주 거주 동포들에게 경고문(‘敬告南滿洲僑居同胞文’을 썼다. 펑톈성(奉天省)에 거주하는 동포들이 28만6천여 명이라는 기사를 보고, 그냥 있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동포들을 위해 붓을 들었다. 그리고 다음 세 가지를 제시했다.

첫째, 산업(産業)이다.

이상룡은 가장 먼저 힘을 쏟아야 할 것으로 산업을 손꼽았다. 타국에서 살림이 궁핍하면 만사가 어려워 질병이 생기고 인구가 감소하니, 가장 먼저 산업에 주력하자고 호소했다.

둘째, 교육(敎育)이다.

우선 이상룡은 인간의 도리(道理)를 다하기 위해서는 교육이 필요하다고 하였다. 이는 고금의 당연지리(當然之理)이다. 이상룡은 여기에 머물지 않았다. “일제에게 땅을 내어주고 이역을 떠도는 것은 교육이 미흡했기 때문이며, 인류가 경쟁의 장(場)에 돌입한 현 상황에서 교육은 무엇보다 중요하니, 한 달에 아홉 번 밖에 식사를 못하는 한이 있더라도, 반드시 교육에 힘써야 한다.”고 지적하였다. 신흥학교는 이러한 인식에 터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셋째, 권리(權利)이다.

이상룡은 “권리는 인간 생명의 뿌리이다. 그런데 스스로 노력하면 얻을 수 있지만, 내버려두면 잃게 될 것이다. 세계의 5억 인구가 목숨을 잃으면서도 냉엄한 경쟁을 하는 것은 모두 권리를 확장하기 위함이다. 산업·교육·권리 이 세 가지는 모두 중요하지만 특히 유념해야 할 것은‘권리’두 글자”라며, 권리의 중요성을 언급하였다.

그리고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권리 확보 방안에 대한 밑 그름을 제시했다. “권리를 만들기 위해서는 사회단체로 단합하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으니, 마을을 만들어 공동체를 키우고, 나아가 법적 단체를 만들어가자”는 청사진이었다.

‘사람마다 마음이 제 각각이라 사실상 단합하기 어렵다고 합니다. 나 역시 이 일이 쉬운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단체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산업이나 교육ㆍ권리를 얻을 수 있는 날이 없게 되어, 사람들은 모두 멸망으로 빠져들게 될 것입니다. 삼가 바라건대 제군께서는 당장 조금 편안하다고 하여 뜻을 이루었다고 여기지 마시고, 생리(生利)가 조금이라도 편할만한 널찍한 구역을 하나 점한 뒤, 각자 마음에 맞는 사람들을 끌어들여서 군거(群居)하는 촌락을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적합한 규약을 정하여 함께 준수해 나간다면, 자연히 마음이 서로 통하고 뜻이 서로 맞아서 마침내 완전한 법적 단체를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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